제7장 ‘선남후북(先南後北)’의 천하통일 전략(11)

제2절 황제가 된 후 다섯 차례의 통일전쟁

 4. 남한(南漢) 평정

 

북한정벌에서 소득 없이 돌아온 후 조광윤은 이전의 ‘선남후북(先南後北)’의 통일전략을 계속해 추진하기로 했다.
 
그는 설화광(薛化光)의 건의를 받아들여 곽진(郭進)에게 서산(西山)을 통제토록 하고, 무수기(武守其)는 진주(晋州)를 지키고, 이겸부(李謙溥)는 습주(隰州)를, 이계훈(李繼勛)은 여전히 소의(昭義)를 지키도록 명하여 군사적으로 북한과 거란을 철저히 방비하도록 했다.
 
1년 남짓한 동안의 휴전과 정비를 거쳐 조광윤은 중국통일의 위업을 재개했다. 970년(태조11) 9월, 남한에 대해 다방면으로 조사와 분석을 끝내고, 남한부터 평정하는 방침을 세웠다.

 

남한왕 유창이 즉위한지 3년째 되던 해에 조광윤이 송나라를 건국했다. 남한의 내상시(內常侍) 소정현(邵廷琄) 소정현(邵廷琄): ‘소정(邵廷)’이라고 쓰인 기록도 있다.

은 평소에 조광윤의 명성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조광윤이 이균과 이중진의 반란을 평정한 후 송나라가 반드시 영토 확장의 속도를 늘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과연 963년(태조4)에 송나라는 길을 빌린다는 명분하에 형남과 호남을 평정함으로써, 남한이 인접국이 되었다. 이에 소정현이 남한왕 유창에게 건의했다.

「송나라는 세력이 강대할 뿐만 아니라 영토 확장의 야망도 큽니다. 언젠가는 남하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송조에 조공을 하던가 아니면 군대를 정비해 저항할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치와 향락에 젖어 있는 유창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한의 부패상과 남한왕의 소행에 대해 조광윤은 벌써부터 낱낱이 알고 있었다. 남한은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나라였다.

맹공을 가하든 공격을 늦추든 그 곳을 함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 조광윤은 후촉을 평정한 후 남한의 일은 한켠에 제쳐놓았다.

조광윤은 단지 반미(潘美)를 남한(南漢)과의 인접지역인 담주(潭州)방어사로, 정덕유(丁德裕)를 도감으로 임명하고는 다시 북한과 거란을 해결하는 문제에 정력을 집중했다.

손자(孫子)는 말했다. “전쟁을 놓고 볼 때 필연코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이라면 군주가 싸우지 말라고 해도 단호히 가서 싸울 수 있다.

전쟁의 원칙을 놓고 볼 때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면 군주가 꼭 싸워야 한다고 해도 싸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아가면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면 형벌을 피하지 않으며 오로지 백성을 보호하고 군주에게 이로운 것만 생각한다.

이러한 장수야말로 나라의 가장 고귀한 재산이다.” 964년(태조5) 9월, 담주방어사 반미와 도감 정덕유는 남한을 공격할 것을 조정에 요구했지만, 조광윤은 동의하지 않았다.

두 장군은 남한의 군사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마음대로 군사를 이끌고 남한의 침주(郴州)를 공격해 자사(刺史), 초토사(招討使) 등 남한의 관리들을 사살했다. 그러나 조광윤은 그들의 죄를 묻지 않았다.

 

송나라가 실제로 파병해서 공격해오자, 남한왕 유창은 그제서야 소정현의 건의가 생각나서 황급히 그를 초토사로 임명해 송군에 대항하도록 했다.

소정현은 군사를 광구(洸口)에 주둔시킨 다음, 병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싸울 준비를 해나갔다.

소정현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반미와 정덕유는 그가 남한을 공격하는데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이간계(離間計)로 남한조정 내의 환관을 매수하고 소정현에 대한 악성소문을 퍼뜨렸다.

이간계는 과연 적중했다. 그 이듬해 여름에 송군이 아직 광구를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남한왕 유창은 “소정현이 딴 마음을 품고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밀고를 받았다. 유창은 다짜고짜 사람을 광구에 보내 소정현이 자결케 했다.

병법에서는 “전쟁을 함에 있어서 적의 상황을 상세히 알고 한 곳을 집중 공격하며 천리를 달려 장군을 사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성공을 부르는 교묘한 전술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송나라의 국경방어 장군인 반미와 정덕유는 남한조정 내에 환관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시켜 조금만 부채질해도 국경을 지키는 유능한 장수라도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