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송나라 북로군은 후촉으로 들어가는 잔도(棧道)가 파손되었기 때문에 전진할 수가 없었다.
왕전빈은 장수 강연택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군을 이끌고 나천로(羅川路)를 통해 진군하면서, 한편으로는 잔도를 보수하도록 했다.
며칠이 안되어 잔도가 복구되자 북로군과 동로군은 심도(深渡)에서 합류했다. 강을 의지해 진을 치고 있는 후촉군을 송군은 세 갈래로 공격해 교량을 탈취했다.
후촉의 주장 왕소원은 교량을 다시 빼앗기 위해 정예부대를 동원해 공격했으나 역시 격퇴 당했다.
송군은 승승장구하여 대만(大漫), 천새(天塞) 등 후촉군의 거점을 공략하고 의주자사(義州刺史) 왕심초(王審超)를 생포했다.
후촉군 주장 왕소원은 병사를 이끌고 몇 번 공격해왔지만 모두 실패하고 하는 수 없이 검문(劍門)으로 철퇴했다.
북로군 주장 왕전빈은 장병을 이끌고 이주(利州)로 진입해 군량 80만석을 노획했다.
병법을 깊이 연찬한 송나라 장수들은 조광윤이 정해준 용병책략을 준수하고 또 현지 실정에 따라 기민한 전략을 펼쳤기 때문에 이주에 진입했을 때 이미 적의 군량 150만석을 노획했다.
타지에서 작전을 하고 먼 길을 달려온 송군에게 있어서 군량을 얻는 것은 뒷걱정을 없애주는 가장 유력한 보장과 같은 것이다.
손자(孫子)는 말했다.
“총명한 장군은 적국에게서 군량을 얻으려 한다. 적의 양식 한 석을 먹는 것은 본국의 양식 20석에 해당하며 적의 마초 한 석을 쓰는 것은 본국의 마초 20석에 해당한다.”
송군은 천리의 군량공급을 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타지에 있어도 근심걱정이 없게 되었다. 왕전빈은 이주에서 검문을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익광(益光)에 주둔시켰다.
천군만마로도 함락하기 어려운 험준한 요새 검문 앞에서 왕전빈은 함부로 행동을 취하지 않고 명령을 내려 장수들이 각자의 공략책을 내놓도록 했다. 시위군 장수 향도(向韜)가 의견을 내놓았다.
「포로의 말에 의하면 익광강의 동쪽으로 몇 개의 큰 산을 넘으면 내소(來蘇)라는 작은 길이 있답니다.
후촉군은 가릉강(嘉陵江) 서안에만 진을 치고 있기 때문에 동안을 통해 도강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검문 남쪽에서 20리 떨어진 곳으로 나오면 청강점(靑强店)에 당도하는데 큰 길과 합류할 수 있답니다.
대부대가 그 길을 따라 간다면 천연요새 검문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강연택(康延澤)이 말했다.
「후촉군은 몇 차례 패배의 쓴 맛을 보고 사기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맹공을 퍼부으면 금방 무너질 것입니다.
내소는 작은 오솔길에 불과하니 장군께서는 나서지 마시고 장수 한 명만 보내면 될 것입니다.
내소를 치는 부대가 약속한 시간에 청강점에 도달할 수 있다면 대군과 남북에서 협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전빈은 사연덕에게 명하여 소(小)부대를 이끌고 내소를 거쳐 길을 에돌아 검문에 접근하되 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약속한 시간에 청강점에 도달하도록 했다.
그리고 본인은 대군을 이끌고 정면에서 검문을 공격하기로 했다. 드디어 청강점에 당도한 사연덕은 후촉 왕소원의 대부분 병력을 견제하게 되었다.
그러자 청강점에 당도한 송군의 소부대와 작전을 벌이기 위해 왕소원은 대군을 한원파(漢源坡)로 이동시키고 검문에 한 부장(副將)을 남겨 지키도록 했다.
이렇게 교전쌍방의 주력과 비주력의 위치가 뒤바뀌는 바람에 송군은 아주 쉽게 검문을 공략할 수 있었다.
두 갈래로 나누어진 송군은 양쪽에서 한원에 있는 후촉군을 협공하여 섬멸하고 감군(監軍) 조숭도(趙崇韜)를 생포했다.
후촉군 주장 왕소원은 동천(東川)으로 도주했으나 송군의 추격을 받아 지난날 호언장담의 명수였던 그는 결국 포로가 되고 말았다.
왕소원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촉왕 맹창은 급히 태자 맹원철(孟元哲)을 대장군으로 하여 증원병 1만 명을 급파했다.
그러나 군사(軍事)를 전혀 모르는 이 귀공자는 싸움에서 패하고 되돌아왔다. 대세가 이미 기울어진 것을 보고 상심한 후촉왕 맹창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우리 부자가 40년 동안 키운 군사가 일단 적을 만나니 나를 위해 동쪽으로 활 한발 쏘지 못하는구나!」
그는 재상 이호를 시켜 투항조서를 기초하게 하고 사자를 보내 송군에 전달했다.
송나라가 후촉에 대한 정벌을 개시하고 왕전빈과 유광의가 변경(汴京)에서 출정해 후촉왕의 투항에 이르기까지 66일이 걸렸다. 송나라는 후촉의 46개 주, 240 현, 53만 4천여 세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