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렴한 재무관리 전문가 심륜(沈倫)
변경(汴京) 출신 심륜(沈倫)은 ‘심의륜(沈義倫)’이라고도 부르며, 그는 학식이 뛰어나서 청년시절에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후한 시절에는 진섬(鎭陝)대장군 백문가(白文珂)의 참모로 있었다.
후주 세종 초 변경지부(汴京知府) 겸 부유수(副留守)로 있던 구거윤(咎居潤)이 칩거해 있는 심륜을 조광윤에게 추천해 그의 막부에서 재물관리를 능력껏 수행했다.
그는 재물관리를 치밀하게 잘 하면서도 재물을 일체 탐하지 않고 오직 책 모으기를 탐하고 책 읽기를 좋아했다.
당시 전쟁터에서 노획한 재물을 가지고 오지 않고 수레에 책만 가지고 오는 사람은 조광윤과 남당 평정할 때 주장을 맡았던 조빈(曹彬) 그리고 심륜 밖에 없었다.
어느 날 송태조 조광윤이 조빈에게 인재를 추천하라고 했을 때, 그는 심륜을 ‘책을 좋아하는 청렴한 관리’라고 추천하여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도록 하였다.
962년(태조3) 봄, 회남(淮南)지역에 일대 흉년이 들어 농민들은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호부랑중 심륜이 오월(吳越)에 사신으로 갔다가 변경(汴京)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주(揚州)와 사주(泗州)에서 기근의 참상을 목격하였다.
차마 눈뜨고 볼 수만 없었던 그는 현지의 관리를 찾아가 물었다.
지방관리는 이 사실을 이미 조정에 보고했다고 했다.
그러나 조정도 일부 평정지역에 대해 감세정책을 실시하다 보니 국고에 비축한 식량이 많지 않아 마음만 초조하고 근심걱정에 쌓여 있었다.
이 상황은 심륜에 의해 송태조에게 보고되었다.
그리고 그는 회남군부(淮南軍府)의 군량미를 이재민들의 식량으로 전용해 줄 것을 건의했다.
그런데 이는 군의 사기는 물론 군사력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 중대사안이기 때문에 조정에서도 갑론을박하면서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민본사상(民本思想)’을 지닌 황제 조광윤과 명신 심륜은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군량미를 이재민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농민들이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했다.
그 후에 흉년이 들 때마다 군량미를 전용해서 이재민들을 구휼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