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따뜻한 인간 조광윤(11)

제2절 청렴한 장군, 검소한 황제

▶ 아우 조광의(趙光義)에게 검소함을 가르치다

 

조광윤은 동생 조광의에게 전전도우후, 변경윤 등의 높은 지위와 직권을 부여해 주었으나, 형으로써 동생에 대한 가르침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느 때인가 한번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었을 때, 조광의가 송태조의 의상이 너무 수수한 것을 보고 형에게 말했다.
「황제의 의상은 화려해야 존귀한 신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광윤은 동생이 사치와 음란한 생활에 물들지 않을까 깊이 우려했다. 그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내가 아무리 수수하게 입는다 해도 일반 백성들보다 백배 화려할 것이다. 후촉왕 맹창이 나라를 잃은 원인은 바로 음란하고 사치한 생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요강마저도 보물로 여기고 장식용으로 달고 다녔다. 이러한 자가 어떻게 멸망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우리 황실 사람들은 평민보다 조금만 더 잘 입으면 된다.
구태여 화려함을 추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광의야, 너는 우리가 협마영에 있을 때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벌써 잊었느냐?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것은 그때보다 훨씬 화려하니라.」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탄복한 조광의는 잘못을 깊이 뉘우쳤다.

 

▶ 셋째딸 영경공주(永慶公主)의 사치스러움을 나무라다

 

검소한 생활을 신조로 하는 조광윤은 근검절약을 강조하기 보다는 솔선수범해 실천함으로써 가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972년(태조13), 17세의 꽃다운 나이가 된 영경공주(永慶公主)는 화려한 자수(刺繡)에다가 예쁜 장신구를 매달은 비취색(翡翠色) 저고리를 입고 입궁했다. 영경공주의 사치한 옷차림에 눈살을 찌푸린 조광윤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이러한 옷차림을 하지 말거라. 주인이 사치해지면 궁내 사람들과 인척들도 다 따라서 모방할 것이다. 여자애들이 다 비취색 깃털을 매달은 저고리를 입는다면 그 가격이 올라가고 장사꾼들은 폭리를 얻으려 할 것이다.
장사꾼들이 저자거리를 전전하며 그런 것들을 파는 사이에 불쌍한 새들이 무수하게 죽어갈 것이니 이는 바로 너 때문일 것이다. 부귀한 가문에서 자란 이상 그 행복을 소중히 여겨야지 어떻게 악덕 장사꾼들을 위해 앞장서겠느냐?」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잘못을 뉘우친 영경공주는 급히 무릎을 꿇고 다시는 그와 같은 장신구를 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부터 그녀는 소박한 궁녀들과 다름없는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으며 이를 본 조광윤도 크게 기뻐했다.

 

확실히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귀한 가문에서 누가 “행복을 소중히 여겨라.” 하는 말로 자녀를 훈계할 자가 있겠는가? 대부분은 선조들이 모은 재물이나 권력에 의존해 마음껏 누리고 낭비하고 그 결과 빈곤과 재앙을 초래했다.
“복 안에 재앙이 잠복해 있다.”고 한 노자의 말은 바로 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경고인 것이다.

조광윤이 영경공주의 저고리에 ‘취유(翠襦)’라고 부르는 비취색 나는 새의 깃털로 만든 장신구를 달지 못하게 하여 무고한 새들을 죽이는 관습을 막으려 한 것은 자연생물을 보호하고 생태균형을 바로 잡으려는 이 시대의 요구에도 걸맞은 생각이다.

인덕의 정치를 실행하는 조광윤은 이와 같이 조류(鳥類)에 대한 살생까지도 안타까워했다.

인덕을 베풀어 조류의 살생까지 막은 봉건제왕은 실로 보기 드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