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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신권의 상징 '의정부 터' 150년 만에 베일 벗긴다

서울시가 조선시대 신권(臣權)의 상징인 '의정부'가 있던 자리이자 사대문 안 문화유적의 핵심 장소인 경복궁 앞 옛 육조거리 중앙 관청터 15,627.7㎡(세종로 76-14 일대)에 대한 첫 발굴조사를 이달부터 본격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이래 지금은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관광버스 주차장, 도로 등으로 이용되고 있어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돼버린 아스팔트 아래 의정부 터의 옛 모습을 150년 만에 밝혀내고 되찾기 위한 것이다.

 

발굴조사는 종묘, 한양도성 등 서울의 중요 유적을 발굴한 바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수행하며, 이달부터 내년 10월까지 약 14개월간 진행된다.

 

시는 발굴조사 기간 동안 기존의 폐쇄적인 방식이 아닌, 개방형 펜스를 설치해 시민 누구나 발굴 현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정기적으로 '생생 설명회'를 개최해 발굴과정을 시민들에게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시는 발굴조사에 앞서 (재)역사건축기술연구소와 작년 6월부터 1년여 간의 종합적인 학술연구(「의정부터 정비 및 활용방안 종합학술연구」)를 실시, 의정부 터를 발굴‧정비하기 위한 학술적 근거를 마련했다.

 

 학술연구에서는 의정부를 비롯해 조선시대 주요 관부가 자리했던 경복궁 앞 육조대로의 역사적 변화상과, 조선시대 문‧무신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와 삼군부가 고종 대에 복원돼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기까지의 과정을 문헌, 사진, 지도 등 각종 자료를 종합 수집‧분석해 고증해냈으며, 보고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학술연구를 통해 의정부를 비롯한 당시 관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건축 구성(외삼문‧외행랑-주요건물-연못‧정자가 있는 후원)과 의정부의 주요 건물 3채(정본당‧협선당‧석화당)의 규모와 배치(복도로 연결된 구조) 등을 고증, 의정부가 관청 가운데 가장 높은 격식을 자랑하는 건축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시는 설명했다.

 

특히, 의정부의 주요 건물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당시 영‧좌‧우의정의 근무처였던 '정본당(政本堂)‘(정면 7칸, 측면 4칸)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최초로 고증했으며, 의정부 후원에 있던 정자가 1925년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진 사실도 이번 학술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냈다.

 

시는 현재 정부종합청사, 미국대사관, 세종문화회관 등 중층 이상 건물이 들어선 육조대로의 다른 관청들과 달리, 의정부 터는 그동안 대규모 건물 신축이 드물고 현재 공원으로 조성돼있는 만큼 지하 유구 보존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해 건물 유구 상당부분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술연구 당시 필지조사에서 전문가들은 육조대로와 접한 의정부 전면 부분이 세종대로 아스팔트 아래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제시했다. 실제로 지난 '13년 공원 내 조형물 설치를 위해 실시한 부분발굴 결과 의정부와 관련이 큰 유구‧유물이 출토돼(문화재청 보존 조치) 의정부 유구의 잔존 가능성이 더욱 높게 전망된다.

 

시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유구와 유물의 실체를 확인하면 학계 전문가, 문화재청, 시민들의 의견을 널리 수렴해 유구 보존 방안과 정비 방향을 선정, 3단계인 의정부 터 재정비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의정부는 1400년(정종 2년) 정종(定宗)이 처음 설치한 이후 1907년 내각 신설로 폐지될 때까지 영의정‧좌의정‧우의정 등이 국왕을 보좌하며 6조의 업무 등 국가정사를 총괄하던 조선시대 최고 정치기구였다. 임진왜란 이후 비변사에 그 실권이 넘어가고 화재로 인해 청사도 이전돼 그 위상이 떨어졌으나 고종 즉위 이후 대원군의 왕권강화 정책에 따라 삼군부 및 6조 관청과 함께 재정비가 이뤄져 본래 위치에 중건되고 그 위상도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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