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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호! 오,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의 사나이!

오~ 세호! 내 친구 “오세호”를 생각할 때면, 늘 아련한 안개 속에 바람결 나부끼듯 천진스레 미소를 머금고 날렵하게 몸동작을 하는 “쎈돌이”가 떠오른다.

세호와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함께 죽을 둥 살 둥 유도(柔道)를 열심히 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리 짱짱하고 날쌔던 세호에게 30대중반 어느 날 갑자기 저승사자처럼 “하반신마비”가 찾아왔다. 보통사람이라면 이리 고통스러울 때 죽음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천길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어도 아찔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지 않고,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 하늘만 올려다보며 용감하게 “해피랜드(happyland)” 정복에 도전했다.

많은 어려움들이 그를 가로막았지만 결코 이에 굴하지 않고, 요즘 북쪽의 누가 좋아하는 장거리미사일처럼 날쌔게 날아가 “해피랜드”에 안착(安着)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고난이 없었다면 “해피랜드”에 올 수 없었다고 감사해 하면서, 그는 비슷한 고난으로 힘들어 하는 장애인들은 물론 외국인죄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를 방문해 위로하며 용기를 불어넣고 하나님께 인도해 기쁨과 감사와 행복을 찾아주는 은혜로운 장로님이 되었다.

겨울방학 때 귀국해 고동 오세호와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외국대학 교수로 한 조각 구름처럼 온 세계를 마냥 떠돌다가 모처럼 고국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설차례도 지내고 조상님들께 성묘도 하고, 발이 부르트게 다니며 그 동안 적조(積阻)했던 친구와 친지들을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에 세호로부터 카톡이 날라왔다. “조박사, 우리 점심 같이 할 수 있을까?” 나는 이틀 후면 폴란드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무척 바빴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열일 제쳐놓고 “그렇게 하지. 연락줘서 고마워.” 하고 쾌히 점심약속을 했다.

우리는 고양시에 있는 원당역 앞에서 만났다. 나는 부인이 운전해서 함께 나올 줄로만 알았는데, 놀랍게도 하반신마비에 창백한 얼굴의 세호가 혼자 운전하고 나왔다. 참으로 놀라웠다.

우리는 장애인이 가기 편하다는 가까운 “어울림한정식”을 찾아가 점심을 함께 나누면서, 그 옛날 유도하던 얘기며 세계를 휩쓸고 돌아다닌 얘기며 수십년 동안 쌓인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나는 식사가 끝났어도 세호와 그냥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서 인근에 있는 “서삼릉(西三陵)”에 가서 바람이나 좀 쐬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정에도 없던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서삼릉을 찾았다.

나는 생전 만져보지도 못한 휠체어를 넓디넓은 잔디밭 위로 계속 밀면서 세호와 함께 조선시대 철종(哲宗)과 철인장왕비(哲仁章王妃)의 예릉(睿陵), 중종(中宗)의 왕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의 희릉(禧陵), 정조(正祖)의 형 의소왕자릉(懿昭王子陵) 의령원(懿寧園), 정조(正祖)의 맏아들 문효세자릉(文孝世子陵) 효창원(孝昌園)을 몇 시간에 걸쳐 한 바퀴 휙 둘러 보았다.

 

여러 릉(陵)을 모두 둘러보고 나올 때, 마침 입구까지 쭉 맨땅으로 된 길이 눈에 띠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같이 유도하던 생각이 나서 100여미터는 족히 될 흙길 위로 휠체어를 힘껏 밀면서 신나게 달렸다.

세호와 나는 숨을 핵핵거리며 모처럼 입이 째지라고 웃었다.
 
여러 왕과 왕비들이 말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는 어린시절로 돌아가 좀처럼 느껴보기 어려운 서삼릉의 쌍큼한 공기 속을 가르며 오랫동안 곰삭은 우정을 되새겼다.


세호와 아쉬움을 남기며 헤어진 지 얼마 안돼, 그에게서 카톡메세지가 날라왔다.
“병세형, 서삼릉에서의 상큼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의 향기는 오래오래 기억될 거야. 정말 고마웠어~~ ^^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사는 병세형에게 새 소망이 있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폴란드여행의 꿈을 꾸고 있어. 나는 약하고 힘이 없지만, 주님의 뜻 안에서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병세형 덕분에~~!!”

나는 “오케이! 언제라도 대환영, 지둘리고 있을게~! ㅎ” 라고 답했다.

나는 폴란드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세호가 쓴 <그 몸으로 행복하게 잘 지내다니 그 비결이 무엇이더냐>라는 긴 제목의 책을 눈물을 줄줄 흘리며 끝까지 다 읽었다. 지금까지 읽어본 책 중에서 이렇게 나를 울린 책은 아직 없었다.

그 이유는 세호가 당한 엄청난 고난이 너무나도 가슴 아팠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과 사연이 “눈물과 감동”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리라…... 정작 그는 “고난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축복의 통로”라고 말했지만…... “나의 절친 오세호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의 사나이다.”

그의 책에서 본 기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호가 어느 날 갑자기 심한 아랫배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가 부인에게 “오늘 밤을 못 넘길 것 같으니 마음 준비 단단히 하세요.” 라고 말했고, 그는 어린 자식들에게 “엄마 말씀 잘 듣고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아빠와 만나자.” 하고 유언까지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세호는 비몽사몽 혼미한 상태를 거듭하다가 갑자기 “할렐루야!”를 연달아 외치며 기적같이 깨어났단다. 그래서 다른 환자들이 그를 “할렐루야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얼마 후, 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극심한 뇌출혈로 말미암아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시각장애까지 겪게 되었단다.

그런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절망하기는커녕, <환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라는 책까지 써서 “92여운간증문학상”을 받았고, 1급장애인으로서 담대하게 도전해 어렵사리 장애인운전면허까지 취득한 후 그 어두침침한 “방콕신세”에서 벗어나 환한 자연풍광을 즐기며 운전하고 있단다. 몸도 성치 않고 시력까지 안 좋은 세호가 힘들게 운전을 한다니 놀랍고 자랑스럽기까지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는 어둠을 탓하기보다 한 자루 촛불을 켜는 마음으로 부인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캐나다까지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크리스토퍼리더쉽(Christopher Leadership)” 교육을 받고 한국 최초의 “크리스토퍼리더쉽 부부강사”가 되어 지금까지 열강하고 있단다.

또한 그는 “하하 호호 웃음동호회”에 가입해 매일 웃음운동을 하면서, “죽음 앞에서도 웃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휠체어를 타고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등지의 성지순례를 무사히 마치기도 하여 걱정했던 주위사람들을 감동케 했단다.

게다가 그는 불교국가인 태국까지 방문해 장애인들에게 기독교 포교를 위한 단기선교를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그는 부인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금식기도원”을 방문해 크리스토퍼리더쉽 첫 강좌를 열기도 했다. 세호가 우리처럼 멀쩡한 사람들도 이루기 힘든 일들을 서슴없이 도전해 모두 이뤄낸 사실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처럼 수많은 기적을 일궈나가는 과정에서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은 척수장애인(脊髓障碍人)으로서 휠체어를 오래 타다 보니 엉덩이에 종기(욕창, 褥瘡)가 생겼고, 그로 인해 인간의 본능인 용변(用便)을 해결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 옷에다가 똥오줌을 그냥 싸버려서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라고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털어놨다.

수십년 동안 세호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한마디 불평도 없이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우뚝 솟은 바위처럼 버티고 있는 천사 같은 부인이 한없이 고맙고 존경스럽다.

오세호는 오랜 장로생활을 하는 동안, 투표로 선출되어 교인을 대표하는 시무장로직(視務長老職)을 6년간 맡아 교회발전과 교인들의 신앙심을 두텁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면서 “늘 밝고, 맑고, 감사하고, 향기롭게” 살아왔다.

목사님들이 간증하는 오세호는 다음과 같다. “오랜 세월 오장로와 함께하면서, 한번도 짜증내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늘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고, 어린이처럼 맑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늘 하나님과 함께하고, 힘든 이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진정한 목자(牧者)이다.”

세호와는 다르지만, 나도 형언할 수 없이 힘들었던 인생역경 속에서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세호의 어렵디 어려운 삶을 소상히 알게 되면서, 그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더 열심히, 더 봉사하며, 더 감사하며,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며 살아야겠다.”

사람이 한평생 사는 동안 고통은 없고 행복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은 크고, 행복은 작다”고 생각하며 산다. 왜 무슨 이유로 세상이 이리 설계되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세호처럼 불행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슬기로운 지혜와 무서운 인내력의 소유자만이 “행복은 크고, 고통은 작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말할 수 있고, 두발로 꼿꼿이 걸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세호는 다행히 말은 할 수 있지만, 두발로 걷지 못하니 그 얼마나 힘들겠는가? 더군다나 한창 때 체육선생으로 남들보다 훨씬 강하고 날랬던 세호의 아픔을 그 누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여러 기적을 일궈낸 세호가 이제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힘차게 걷고, 옛날처럼 발이 보이지 않게 빨리 달리는 기적”을 우리에게 더 보여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해 본다. 그렇게 되면 세호와 함께 다시 한번 유도를 해보고 싶다.

아일랜드 출신 성직자(聖職者)로 정신의학자인 조셉 머피(Joseph Murphy)는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을 생각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갈파(喝破)했다. 이 말은 견디기 힘든 고난을 당했지만, 언제나 좋은 일만 생각하고 좋은 일만 골라했던 오세호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호가 원하는 대로 폴란드로 나를 찾아와 함께 웃음꽃 피우는 여행을 해보고 싶은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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