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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대학"한국학과 설립에 불쏘시개를 지피다.

"독일" 루트비히스하펜대학교

바람 같이 구름 같이 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나는 무슨 인연인지 이번엔 독일까지 흘러가서 “한국이라는 약”을 파는 “약장수”가 되었다. 

 

폴란드 야기엘로니아대학(Jagiellonian University) 교수로 있는 나는 지난 12월 2일 독일 서남쪽 라인강(Rhine River) 가에 한 폭의 그림처럼 서 있는 루트비히스하펜대학(Ludwigshafen University) 동아시아학부(EAI) 대강당에서 60여명의 학생들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국학소개” 공개특강을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마쳤다. 다행이 생각 외로 약이 좀 팔린 셈이다.

 

이날 특강은 한국의 오랜 역사와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등 위대한 한국인, 깊은 전통과 종교, 유네스코(UNESCO) 문화유산, 독창적 예술, K-POP등 세계적 붐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韓流), 오뚝이 같은 한국인 기상(氣像),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인의 따뜻한 정(情)과 다이내믹(dynamic)한 흥(興), “라인강의 기적(Miracle of the Rhine)”과 “한강의 기적(Miracle on the Han River)”, 세계 속의 한국경제, 한국 광부와 간호사의 독일파견, 한-독간 경제 및 외교 협력, 남북한상황을 비롯한 엄중한 동북아정세, 마지막으로 빼어난 관광명소들을 압축하여 2시간에 걸쳐 소개했다.

루트비히스하펜대학은 고맙게도 독일에서는 흔치 않게 내년(2016) 가을학기 개강을 목표로 <한국학과>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나는 친우 부경대학교 고종환교수의 소개로, 지난해 폴란드 야기엘로니아대학에 한국학과 설립경험이 있는 나와 이 대학 동아시아학부장 프랑크 뢰베캄프(Frank Rövekamp) 교수가 서울과 부산에서 만나 한국학과 설립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공개특강 제의를 받아 이뤄졌다. 그래서 나는 이날의 공개특강이 내년 가을학기 한국학과 설립을 앞두고 독일대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의 씨앗을 뿌리고 한국사랑을 불지피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Klein aber Oho!”라는 독일속담을 예로 들면서 한국을 설명하여 독일학생들과 교수들을 웃기기도 했다. 이 말은 “작은 고추가 톡 쏘게 맵다.”는 우리 속담과도 같다. 이 것이 식민지침탈 후 처절한 좌절감과 이어진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한국인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게 한 밑거름이됐다고 소개했다.

이 강의를 마친 후 나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독일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와 코소보 난민들과 함께 4일 동안 바트 보클렛(Bad Bocklet)에서 생활하는 동안 뢰베캄프교수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 왔을 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교수님, 어제 저희 대학을 방문하여 특강해 주신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 한국에 관한 방대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소개해 주셨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오늘까지 학생들이 계속 몰려와서 교수님PPT강의자료를 복사해 달라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음 번 오실 때는 이 근처에 있는 슈파이어(Speyer)와 하이델베르크 등 세계문화유산지역을 관광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강의를 준비하는 동안 수많은 밤을 새우고 또 여행경비도 나름 들었지만, “내가 아직 살아있어서 내 나라를 위해 눈곱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라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내가 바트 보클렛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만하임(Manheim)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인사하는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중국어를 전공한다는 닐스(Nils)라고 하는 학생은 “교수님, 학생들이 모두 감동적인 강의였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데, 강의 후 질문을 하라고 했을 때, 교수 한 분을 빼고는 왜 아무도 질문을 안 했지?”라고 물으니, “사실, 저희들은 일본과 중국은 알지만, 한국은 잘 몰라서 뭘 물어야 할지 몰랐어요. 우리가 한국에 대해 더 공부하고 나면 질문할 수 있을 겁니다.”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이것이 밖에서 보는 우리의 위상이구나!” 하고 짠한 마음이 일었다.

향기 나는 꽃은 그 자리에 있어도 벌과 나비들이 찾아 온다. 그건 옛말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이니만큼, 설사 향기를 지녔다 하더라도 지구촌 반대편까지 향기를 전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우리의 향기로움과 위대함을 알릴 수 있는 데까지 널리 알려서, 침체되는 무역을 활성화시키고 관광수입도 늘리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지난 세기 이전의 이른바 “은자(隱者)의 나라 (Hermit Kingdom)”로 남아서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다. 우리는 밉더라도 그런걸 잘 챙기는 이웃나라를 배워야 한다.


나는 늘 약속시간보다 일찍 가는 못 말리는 성격대로, 특강이 있는 날에도 예정보다 1시간 이전에 루트비히스하펜대학 동아시아학부에 가서 이 학부 행정실장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건물 내에 있는 자그마한 박물관을 둘러봤다.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도, 마음은 착잡했다. 박물관 안에 일본과 중국의 작품과 유물은 많았어도 한국 것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동아시아학부 박물관이면서도 인도나 인도네시아 등 서남아나 동남아 작품까지 많이 있는데, 정작 동아시아 주요 3개국 중의 하나인 한국은 소외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루트비히스하펜대학의 동아시아학부(EAI)는 약20년전 동아시아지역 특히 일본과 중국의 정치, 경제, 경영, 교육, 연구 등을 가르치기 위해 1997년에 설립되었다. 특히 2016학년도 가을학기에는 한국학과를 개설하여 한국의 경제 및 통화정책, 경영, 한국어를 전공할 학생들을 뽑을 예정이다. 루트비히스하펜대학은 부산 부경대학 등 20개 한국의 대학들과 학생 및 교수간 교환협정(Exchange MOU)과 자매결연관계를 맺고 있다.

이 대학이 위치한 도시는 대학이름과 마찬가지로 “루트비히스하펜”이며,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만하임시와 마주 보고 있고, 하이델베르크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 도시 이름은 1843년 바이에른왕국의 루트비히1세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고, “하펜(hafen)”은 “항구”로 라인강 가에 루트비히(Ludwig)왕을 기념하는 항구도시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세계최대 화학회사인 바스프(BASF) 본사가 있는 대규모 화학공업단지로 변모되었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독일은 어떤 나라인지, 유럽과 독일 대학에서의 한국학 실정은 어떠한지 간략하게 살펴본다. 우리가 알다시피 독일은 2차대전 후 45년간 동서독으로 분단되어 힘든 세월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 아픔을 딛고 유럽 최대경제강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28개국과 유로화(Euro貨)를 쓰는 유로존(Eurozone) 19개국의 선도국(先導國)으로 도약했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Miracle on the Han River)”을 이뤘듯이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Miracle of the Rhine)”을 이뤘다.

특히, 2005년 이후 10년 넘게 장기집권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총리는 그리스국가부채문제 등으로 파경에 이른 유로존을 지켜냈으며, 근래 수년 동안 수백만 명의 시리아 등 중동지역과 발칸(Balkan)반도 난민(難民)을 인도주의적으로 받아들인 점을 높이 평가 받아 뉴욕타임지가 2015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할 정도로 독일은 명실공히 세계 속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다.
 

 

한편, 유럽에서 처음으로 한국학강의가 시작된 것은 2차세계대전 후 한국이 일본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랬기 때문에 당시 유럽에 한국학전공 학자는 있을 수 없었고, 일본학전공 학자들이 한국어문학에 중점을 두고 나라별로 동양학과나 일본학과 안에 한국학강좌를 개설했다.

폴란드의 경우는 다른 유럽나라들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유럽 최초로 유럽사람이 아닌 한국인 의사(醫師) 유동주(劉東周)박사가 바르샤바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박사는 특히 안중근의사를 도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에 가담한 유동하(劉東夏) 애국투사의 동생이다. 그 후 1947년 네덜란드 레이던대학교(Leiden University)의 일본학전공 프리츠 보스(Frits Vos)교수가 한국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그는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를 발명했다”고 극찬한 바 있다.

유럽에서는 북미에 비해 한국학은 물론 동양학의 규모와 열기가 뒤지는 편이지만, 영국은 과거 광활한 식민지를 통치했던 유산으로 런던대학교의 동양아프리카학부(SOA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는 이 부문에서 세계최대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프랑스, 독일, 폴란드에서 한국학이 새로운 관심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대학의 한국학과 학생들은 2000년부터 한국의 대학 및 연구기관간의 학생교류협정(MOU)에 따라 대체로 1~2학년을 마치면 한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반년 내지 1년 동안 체류한 후 다시 돌아가서 학업을 마친다.

독일대학 중 한국학과가 있는 곳은 베를린자유대(Freie Berlin), 보훔대(Bochum), 본대(Bonn), 함부르크대(Hamburg), 튀빙겐대(Tübingen) 등 5개 대학이 있다. 다만, 동독(東獨)에 속했던 동베를린시에 있었던 훔볼트(Humboldt)대학의 경우 한국전쟁 직후 한국학과를 설립하여 주로 북한과 교류했으나, 통일 후인 2000년 아쉽게도 베를린시 재정사정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 외에 정식전공은 아니지만 한국어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대학으로는 뮌헨(München)대학,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대학, 레겐스부르크(Regensburg)대학 등이 있다. 이들 대학 중에서 본(Bonn)대학교의 한국번역학과는 학생이 100명에 달하여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가 못살았던 적의 아픈 역사지만 1960~1970년대 파독(派獨) 간호사와 광부 중 현지에서 자리잡았던 이들의 한인2세가 한독(韓獨) 번역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끝으로, 우리는 “한국이 잘 살고 대단한 나라”라는 프라이드(pride)를 갖고 있지만, “바깥 세상이 바라보는 한국”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는 실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유럽에서는 “아시아”하면 단연 “일본”이 으뜸이다. 근래 들어 중국이 급성장하여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일본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일본은 국력이 한풀 꺾이고 있는데도 “국력에 비해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나마 “국력에 비해 과소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일본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보급기지 역할을 하면서 경제가 급성장하여 1970년대부터 정부와 기업들이 전범국(戰犯國) 이미지 청산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해외에 많은 투자와 홍보를 했던 결과이다. 일본은 미국, 유럽 등 수많은 외국의 학자나 학생들에게 다량의 연구비를 지원하여, 일본을 홍보하는 논문, 저서, 영상물 등을 다수 발간하게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친일인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이름난 삼성 핸드폰, 현대/기아자동차, LG전자제품과 K-Pop, K-Drama 등 한류(韓流; Korean Wave) 덕분으로 서서히 알려지면서 이제 겨우 “한국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깊은 역사, 독특한 전통과 문화, 예술, 한국인의 근면하고 강인한 기상, 국토와 기후가 아름다운 나라라는 점은 잘 모르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밥그릇싸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인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정부와 대기업들이 발벗고 나서서 한국의 위대함과 진면목을 알리는 홍보가 절실함에도 그게 그렇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차원이나 대기업 차원은 아니지만, 개인적 역량을 발휘하여 국제기구의 활동을 통해 “한국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점을 온 세상에 알리고 있는 홍보대사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총재 등 세계적 인물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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