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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나라 폴란드의 만성제(萬聖祭)와 만성절(萬聖節) 감동적인 풍습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만사(萬事)에 무리가 없다.”는 성현(聖賢)의 말씀이 있다. 하지만, 남을 알기도 어렵고 나를 알기는 더욱 어렵다. 폴란드의 깊은 종교문화를 지켜보면서 이를 거울삼아 한국의 종교와 종교문화가 나가야 할 방향을 되새겨 본다.

폴란드는 국민 87%가 가톨릭신자인데, 한국은 유신자가 50%(불교22%, 개신교21%, 가톨릭7%) 무신자가 50%이다. 폴란드에서 수년 머무르는 동안 매년 늦가을 만성제(萬聖祭)와 만성절(萬聖節)을 겪으면서, 우리와 색다른 문화 즉, “10월 끝날과 11월 첫날” 연 이틀 동안 “공동묘지에서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고, 갖가지 사연으로 헤어졌던 산 자들도 다시 만나는 추모축제(追慕祝祭)”에 대한 가슴 뭉클한 풍습을 소개한다.

매년 10월 31일은 만성제(萬聖祭) 또는 “할로윈(Halloween)”이며, 크리스마스 다음 가는 축제인 만성절의 전야제(前夜祭)”로서 “세상을 떠난 일가친척 뿐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모든 죽은 자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달리 말하자면, 크리스마스 전날이 “크리스마스 이브(Christmas Eve)”인 것처럼, 만성제는 “만성절 이브(All Saints’ Day Eve)”인 셈이다.

“폴란드사람들은 죽어서도 이렇게 생전의 지위나 명예와는 상관없이 아름다운 꽃과 촛불 속에 파묻혀 산 사람들의 열기(熱氣) 속에서 따뜻하게 축제를 맞을 수 있다니 영원히 외롭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며, 이들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따스한 마음에 감동과 존경감을 느끼며 마냥 부러운 생각이 든다.

매년 11월 1일 만성절(萬聖節)은 가톨릭의 주요 축일(祝日) 중 하나로서, 이름있는 성인은 물론 이름없는 성인과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날로 다른 이름은 “성인(聖人)의 날” 또는 “대축일(大祝日)”이라고도 한다.

폴란드에서는 할로윈축제가 다가오는 며칠 전부터 꽃집은 물론 길거리에서도 두 축일에 쓰일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선보인다. 특히, 이 기간 중에는 모든 상점과 식당이 문을 닫기 때문에, 하루 이틀 전부터 슈퍼마켓과 상점들은 식재료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룰 뿐만 아니라, 직장과 학교도 당연히 휴일을 맞는다. 그래서 나와 가까이 지내는 제자들과 친지들은 내가 혹시라도 식당을 못 가서 굶어 죽기라도 할까 봐 미리 먹을 것을 꼭 준비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만성제와 만성절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꽃다발이나 화분과 촛불이 들어있는 항아리모양의 형형색색의 유리초롱을 들고 공동묘지를 찾아 죽은 이들을 추모한다. 이때 공동묘지를 찾는 차량행렬이 곳곳마다 교통체증을 일으키는데, 마치 추석 때 성묘 가는 차량들로 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광경을 연상케 한다.

이 기간 중 폴란드 공동묘지는 단순한 “죽은 자들이 사는 마을”이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가 어울리는 광장”이요,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친척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산 자들의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동묘지에 가서 죽은 이들을 추모하고 남는 시간에는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들이 함께 모여 오붓하게 식사를 나누면서 그 동안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상면(相面)의 기회를 갖는다. 이때 대다수 사람들은 여행가지 않고 일터에서 배움터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관광회사들마저 휴업을 하여 여행티켓을 구하기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지금부터 내가 폴란드에서 겪은 우리와는 아주 다른 풍습인 만성제와 만성절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천주교신자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만성제 (할로윈, Halloween) 이야기>
2013년 10월말경,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는 652년 오랜 역사와 전통의 명문 야기엘로니아대학에 초빙교수로 부임한지 두 달이 채 안된 어느 날, 제자와 친지들과 함께 크라쿠프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크라쿠프대광장(Rynek; Main Square)을 찾았다.

그때 미모의 젊은 여인이 나에게 다가와 어눌한 한국말로 “한국사람 아녜요?” 물었다. 나는 한 물간지 오래된 사람이지만, 혹시 내게 관심이 있는가 싶어서 “그런데요?” 하니, “반가워요. 난 한국 중앙대에서 1년 경제학 공부했어요.” 하면서 떠듬떠듬 말문을 열었다.

더 이상은 한국말이 통하지 않아 우리는 편하게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야기인즉, 자기는 크라쿠프의 “크라쿠프경제대학(University of Economics in Crakow)” 경제학석사과정 학생인 카타르지나 파후타(Katarzyna Pachuta, 일명 ‘카샤’)이고, 이번에 졸업하는데 한국경제 관련 학위논문을 쓰려하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논문을 좀 지도해 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남의 부탁이라면 거절을 못하는 별난 성격에다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이 고마웠고 내 전공분야가 한국경제인지라, “아아, 하느님이 또 숙제를 내시는구나!” 생각하며 쾌히 승낙했다.

나는 그 학생의 논문을 주제, 서론, 구조, 결론으로 나누어 구상하고, 내 강의자료까지 포함한 관련자료들을 모두 준비했다. 며칠 안되어 자기가 크라쿠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금광산이 있는 보흐니아(Bochnia)라는 자그마한 도시에 살고 있는데, 자기부모들이 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만성제에 맞춰 집으로 초대하고 싶고, 그때 집에서 논문지도를 받고 싶다고 하여 새로운 곳에 호기심이 많은 나는 그 학생을 따라 나섰다.

폴란드의 만성제 경험을 이야기하려다가 샛길로 빠졌지만, 지금까지의 긴 서두는 각설(却說)하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보흐니아 숲 속에 자리잡은 “카샤”의 집에 도착하니, 놀랍게도 현관문에 “안녕하세요(Dzień dobry)”라는 한글문구와 함께 태극기를 붙여 놔서 눈물을 글썽하게 했다.

카샤의 집에서 간단하게 차를 마신 다음, 그 집 식구 4명과 함께 나는 인근 숲 속의 코무날니 공동묘지(Cmentarz Komunalny)를 찾았다. 공동묘지의 입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꽃과 촛불램프를 파는 상인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공동묘지 입구에는 <1787>라는 쇠로 만든 아치(arch)가 서 있었는데, 아마도 이 묘지는 1787년 즉 지금부터 22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폴란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애국자와 일반인들과 함께 폴란드를 123년간 집어삼켰던 러시아인들의 묘지가 말 그대로 “공동(共同)”으로 있었는데, 폴란드사람들이 러시아인들의 합동묘지에도 헌화를 하고 기도하는 모습은 나를 감동케 하였다. “과연 우리라면 공동묘지에 일제(日帝) 때 죽은 일본인들의 묘지를 함께 쓰고 기도까지 하겠는가?” 이들의 생각은 우리보다 한량없이 넓고 깊은 듯했다. 아마도 “우리가 매년 참배할 테니, 앞으로 다시는 우리 강토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학살하지 마시오.”하고 기도하는 듯 싶었다.

공동묘지에 참배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함께 축제 때 즐겨 먹는 칠면조고기로 맛난 저녁식사를 마치고, “하느님 숙제”인 논문지도를 성심껏 해준 다음 서둘러 크라쿠프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후 정말로 놀랄만한 기적이 일어났다. 한해가 저물고 2014년 봄이 되었는데, 카샤로부터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교수님, 나 졸업식때 최우수논문상 받았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아아, 하느님이 내가 한 숙제에 후한 점수를 주셨구나! 감사합니다.”하고 거수경례를 붙였다. 내가 지도한 한국경제에 대한 논문이 최우수논문이 되었다는 말에 뿌듯하여 감동의 전율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카샤는 석사학위를 성공적으로 받은 후 폴란드 주재 독일대기업에 취직해서 독일을 밥먹듯이 오가면서 젊은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만성절 (성인의 날, All Saints’ Day) 이야기>
만성절인 오늘(11.1),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폴란드청년 리샤르드 오필스키(Ryszard Opilski)와 몇몇 한국을 사랑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어둠이 짙은 깊은 밤에 크라쿠프 시내에서 멀지 않은 라코비츠키 공동묘지(Cmentarz Rakowicki)를 찾았다. 한국의 문화로 따질 때,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찾는다면 아마도 도굴범이나 생(生)을 비관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이곳 폴란드에서는 만성절이나 만성제 때 밤중에 공동묘지를 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며, 자기들이 믿는 가톨릭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따르는 것일 뿐이다.

이 공동묘지는 크라쿠프에서 가장 큰 것으로서, 한밤중의 광경은 참으로 가슴 찡하면서도 미국 라스베가스의 불야성을 보는 듯했다. 날씨가 춥고 밤이 깊었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손에 손을 잡고 꽃과 촛불을 들고 계속 몰려와서 경건하게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모습은 참으로 이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게 했다.

특히, 리샤르드는 마음이 착하여 다른 사람들이 꽃과 촛불을 바치지 않은 컴컴한 묘소만 찾아 다니면서 미리 준비한 20여개의 램프로 불을 밝히며 외로운 영혼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네가 바로 천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의 만성제와 만성절 이야기를 마치면서, 세상만물은 보는 이의 마음과 시각과 위치와 때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평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평소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잘 나타내지 않는 폴란드사람들의 진지한 축제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경건하고도 넓고 깊은 마음가짐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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