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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편승되는 수행법(10)

박선희 박사의 힐링 칼럼

나는 시간이 날 때면 틈틈이 집 근처에 있는 숲속 길을 걷는다. 특히 할 일은 많은데 집중이 안 되어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영감이나 직감을 얻고자 할 때 나는 숲속 길을 걷는다. 나는 이 길을 ‘힐링로드’라고 부른다. 이유는 이 길을 걷고 나면 거의 언제나 머릿속이 명쾌해지며 몸에는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숫자를 세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산책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 둘, 셋, 넷 ...백 ..천..하며 속으로 숫자를 세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나는 왜 산책할 때면 항시 숫자를 세는 거지?”하고 숫자를 세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다가도 나는 다시 또 숫자를 세면서 걷는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숫자를 세면서 걸으면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 즉 에고의 외부중심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점 이었다. 숫자를 세는데 마음이 집중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다.

 

더욱 좋은 점은 숫자에 맞춰 걸어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리듬믹컬 해진다는 것이었다. 걷는데 리듬감이 붙기 시작하면 일상적인 상념으로부터 벗어나 내 눈 앞에 펼쳐진 녹색 자연과 강렬한 빛, 풀냄새, 신선한 공기와 함께 일체가 되어가는 행복한 기쁨을 맛본다. 나무들, 사슴들, 다람쥐들 그리고 이 숲속에 사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이 모두 진동하고 움직이고 나 또한 이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의미 있는 깨우침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단순하게 숫자를 세는 것만으로도 에고로 부터 벗어나 마음이 각성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나,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명상법이 있으며 그 수련법 또한 수없이 많다. 여러 문화권의 종교에서 보여주는 명상법들을 관찰해보면 반복적인 소리나 몸의 움직임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리듬에 동조함으로서 심신을 이완상태로 유도하는 다양한 수행법들을 볼 수 있다.

 

힌두교나 불교에서 진언(眞言)’ 이나 ‘주문’ 과 같은 만트라(Mantara)를 왼다. ‘관세음보살’ ‘옴마니반매훔(마음속에 핀 연꽃)’ 혹은 ‘옴’등의 만트라를 소리 내어 반복함으로서 마음을 높은 의식 상태로 고양시키게 하는 수행법이다. 물론 만트라는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 고대의 주술가조차도 다양한 주문을 사용한다. 각각의 만트라의 소리는 다르지만 의미가 있으며 에고로부터 벗어나 주문이 의식을 깨워주고 최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우주의 소리라고 하는 '옴' 소리의 진동 혹은 리듬에 동조하게 되면 의식이 절대적인 공간속으로 빠져 들어가 소리 에너지의 힘에 둘러싸이게 한다. 만트라는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효과가 크다고 한다. 일본의 신흥 종교인 창가학회에서는 ‘남묘호랭케교’라는 만트라를 일정하게 긴 시간 반복한다. 이렇듯 예로부터 만트라를 종교의 수행법으로 실천해 온 이유는 되풀이 되는 소리가 마음을 이완시키고, 소리의 진동에서 생성되는 에너지에 의해 사람의 마음을 빠르게 각성시켜 높은 의식 상태에 머물 수 있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런던에 살고 있을 때 연화사라는 한국 절에 자주 갔었다. 그때 반야심경과 천수경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생전 불경을 접해 본적이 없던 나로서는 불경을 읊는 것이 영 어색하고 쑥스러워 합창소리에 감히 끼어들지 못하였다. 그런데 한참 듣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님의 구수한 불경소리와 단조로운 리듬 속으로 자연스레 빠져드는 게 아닌가. 법회가 끝나고 차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절에 다닌 적이 없는 분이 어떻게 그렇게 불경을 잘 읊냐는 것이었다. 나도 그 점이 의아했긴 했지만 “그저 불경의 말이나 소리 보다는 리듬에 맞추어 소리를 내니 저절로 읊어지던데요”하고 경험한 그대로 대답했다. 불경을 읊는 리듬과 목탁소리에 몸과 마음이 편승되면 일단 막힘이 없어진다. 마치 우리가 술이라도 한잔하면 가라오케에서 노래가 술술 자연스레 나오듯이 말이다. 리듬에 맞춰지면 소리뿐 아니라 몸도 저절로 움직인다.

 

‘절(拜)’ 수행법이라는 것도 있다. 절은 세계 각국 구도자들이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 위해 선택한 오랜 수행법이다. 몸을 낮춰 바닥에 엎드리는 절은 자신을 낮춤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해탈의 지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행해진다. 불교에서는 108배라는 수행법이 있는데 절 동작이 어느 정도 몸에 익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여러 잡생각이 들고 몸의 움직임 또한 밸런스를 잡기 어려우나 한번 리듬에 타기 시작하면 온몸 구석구석에 부드러운 윤활제라도 친 듯이 절하기에 몰입된다. 절수행과 같이 신체를 이용한 명상법은 전신을 움직여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앉아서 하는 명상보다 빠르고 깊게 몰입상태에 도달한다.

 

이슬람 신비주의로 알려진 '수피'(Sufi)의 명상 춤이라는 것이 있다. 이 춤은 빙글빙글 반복적인 회전만을 몇 시간이고 지속하는 움직임을 통해 신에게 다가가 진리를 체득하고자 하는 춤 명상법이다. 런던 Hammersmith 라는 곳에 가면 수피 센터가 있다. 수피 수행법을 통해서 천상의 경지를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몇 개월간의 트레이닝이 끝날 즈음 그들은 관계자나 일반인들을 초청하여 ‘세마(춤)의식’을 행한다.

 

수행자들은 자아의 죽음을 상징하는 흰색 수의를 입고 긴 갈색모자를 쓰고 빙글빙글 반복해서 돈다.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보고 있는 사람조차도 트랜스에 빠지게 하는 동조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20대에서 70대까지의 20명 정도의 남녀 수행자들이 고개는 약간 옆으로 기울이고, 양팔은 벌려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향한 모습으로 나선형의 회전춤을 춘다. 같은 포즈로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보이나 무용수들은 제각기 다른 의식 세계에 빠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힘찬 회전을 하는 이가 있으며 천천히 선회하며 그 상태를 즐기며 춤추는 이도 있다. 기술로 도는 자가 있으며 리듬에 타서 도는 자가 있다. 선회의 리듬에 완벽하게 편승된 자는 돌고 있다는 의식이 없어지기 때문에 힘이 들거나 피로한 감각이 사라진다. 따라서 잘 돌고 못 돌고는 그 무용수가 리듬에 편승되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는 듯하다. 그들은 몸과 의식이 우주의 리듬에 동조된 듯한 신비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열거한 수련법들의 공통점은 한 점에 집중하여 진동의 리듬에 편승하면서 수련된 의식을 개발하는 것이라 축약할 수 있겠다. 한가지의 소리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지속적인 반복과 몰입 그리고 리듬에의 편승은 수련자를 무아지경 즉 자유로운 의식상태로 유도한다. 이러한 행위는 에고의 생각을 내 머릿속으로부터 밀어내고 진아(眞我)가 순수하게 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이는 즉 신체의 주파수가 이완된 파동에 동조되어야 제대로 된 명상세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단계에 들어서게 되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주 진동의 리듬에 편승할 수 있게 되며 신체 활력의 기(氣) 또는 에너지가 당신내면으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명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물질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심오한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일 것이다.

 

참고자료

 

Park, S. (2011). An investigation into healing aspects within Shamanic traditions might be relevant for contemporary DMP practices, Roehampto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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