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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의 틈새사이의 ‘나’(6)

박선희 박사의 힐링 칼럼

장자의 유명한 나비이야기가 있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고 있던 장자가 깨어나서는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자신은 나비가 꾸고 있는 꿈인가? 하는 이야기다. 나는 종종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기도 하지만 친구랑 길을 걸으며 대화하고 있을 때에도 친구는 땅위를 걷고 있지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둥둥 날면서 대화를 한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바로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내 몸은 아직 날고 있을 때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고, ‘나는 날 수 있다’고 하는 당연한 믿음을 갖곤 한다. 어떤 때는 잠이 깨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도 이 느낌이 유지되곤 한다.

 

이렇게 잠에서 바로 깨어나기 직전 꿈과 현실의 틈새사이에 놓여 있을 때 ‘나’라는 자아의식이 아직 내안에 자리 잡기 전의 존재 상태를 경험하곤 한다. 이 순간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형성되어온 ‘나’라고 하는 자아 즉 나는 어디에 사는 무엇을 하는 누구인지 등의 자아가 의식 안에 자동적으로 자리 잡기 직전의 상태인 것이다. 디팩 초프라 Deepac Chopra 의 표현에 의하면 이는 마치 아무것도 입력이 안 된 백지 상태의 신생아의 ‘순수의식’ 상태로, 그 순간에 우리는 시간과 의식의 흐름조차 느낄 수 없는 그저 순수한 우리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뇌파는 4헤르츠 라는 아주 낮은 상태로 무의식이 잠자고 있는 듯한 상태이다. 이상태가 인간에게 최상의 상태라고 하는데, 이 상태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낌도 특별히 규정지을 만한 상태가 아닌 그저 존재 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다가 의식이 깨어남과 동시에 몇 초안에 예를 들어 ‘나는 미국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변호사로 아이 셋의 아빠이며 오늘아침 중요한 클라이언트와의 약속이 11시에 있다 등등’ ‘나’ 라고 하는 의식이 내안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중 언제 이렇게 자아에 의해 변화 되지 않은 상태를 경험하는 것일까? 이러한 일상 의식상 태와는 다른 변성된 의식상 태를 심리학용어로 변성의식상태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라고 일컫는다. 무언가에 몰입하거나 마음(자아)이 잠시 외출했을 때 트랜스trance 혹은 최면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이러한 변성의식의 상태에는 무의식과 소통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트랜스의 달인은 세계의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도 존재했던 샤먼들이다. 그들은 일상의식과 트랜스 상태를 on & off 하며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삼매경 혹은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짐으로서 순수의식의 경지에 도달하여 깨달음을 얻는다. 무당들이 신 내림을 받아 작두위에 올라 덩실덩실 춤추는 신들림의 상태 또한 무아지경 즉 깊은 트랜스 상태에서 행해진다. 이러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한 가지에 마음을 빼앗긴 몰입상태나 정신을 놓은 혹은 마음이 나간 상태에서 변성의식을 경험한다. 깜박 잠이 들어 백일몽을 보게 될 때, 나이트클럽의 번쩍이는 조명아래서 미친 듯이 춤을 출 때, 하드록 라이브 콘서트 분위기에 흠뻑 젖어 완전히 몰입하고 있을 때, 섹스할 때, 사랑에 빠졌을 때, 좋아하는 음악 혹은 책에 완전히 몰두해 있을 때. 종교에 빠져 몇 시간이고 불경이나 찬송을 외고 있을 때, 기도할 때, 명상할 때 하물며 몇 시간째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가수면 상태에서처럼 말이다.

 

그 깊이나 목적이나 의도에 관계없이 앞에 열거한 의식상태의 공통점은 ‘나’ 라고 하는 자아의식이 꺼진off 상태 이다. 이 말은 곧 우리의 일상의식은 자아의식이 켜져 있는 on이 된 상태라는 말이 된다. 실제로 우리는 자아정체성에 의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자아에 의해 만들어진 정체성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나’인간다움인 것일까? 나의 귀중한 의식의 초점이 이사회안의 갑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한 목표를 향해 지금까지 달려온 것은 아닐까? 우리의 뇌는 사회라고 하는 집단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기존의 세계관 안에서 배워지고 형성되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은 과연 맞는 것일까 .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 사회적 규정이라는 무서운 집단 최면 속에 갇혀 의식의 중독과 습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인식 한계가 이처럼 집단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세계관 안에 가둬져 있기에 더 넓고 깊은 무궁무진한 앎의 기회를 평생 가져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리고 만다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많은 철학자들이나 명상가 들이 “당신의 내면에 바로 당신이 찾는 답이 있어요” 하고 외쳐봤자 결국 결코 이 신비의 의식상태의 존재유무 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우리가 습득하고 배운 인식방법에 의해 완전히 조종되고 있다. 영적 성장의 중요성이 완전히 무시되어온 교육과 사회 환경인에서 우리는 내면의 지능이 발달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영혼의 진실한 힐링은 잘못 입력되어온 일상의식을 초월한 ‘나’를 경험하는 것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러 층 안에 존재한다고 한다. 각 개인의 인격과 에고와 신체를 만들어내는 불변의 장은 우리의 오감으로 인식되지는 않지만 깊숙한 내부에 존재 being의 가장 내밀한 핵심에 있다고 한다. 많은 명상가들이나 현인들에 의하면 일상의식 즉 자아의식이 꺼진 깊은 변성의식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보다 많은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과 ‘앎’이라는 지성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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