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문관 우대정책 실시(05)

제1절 문관 우대정책을 위한 기반 조성

4. 송태조의 두 번째 연호 ‘건덕(乾德)’에 얽힌 이야기

 

한 사건이 송태조 조광윤으로 하여금 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했다.

965년(태조6)에 후촉을 평정한 후 조광윤은 일부 후촉 궁녀들을 궁에서 일하게 했다. 후촉 궁녀들은 궁에 들어오면서 원래 쓰던 일상용품들을 갖고 들어왔다.

조광윤은 궁녀들의 화장대를 둘러보다가 구리로 된 거울 뒤편에 “건덕4년주(乾德四年鑄)”라고 쓰여 있는 글씨를 발견했다.

의아하게 생각한 조광윤은 좌우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현재는 건덕(乾德) 3년 초인데 어떻게 건덕(乾德) 4년에 주조한 거울이 있는가?」

좌우가 대답을 못하자 조광윤은 재상 조보에게 물었다. 그런데 조보도 역시 대답하지 못했다.

조광윤은 또 한림학사(翰林學士) 도곡(陶谷)과 두의(竇儀)를 불러 물었다. 비로소 두의가 대답했다.

「전촉왕(前蜀王) 왕연(王衍)이 ‘건덕(乾德)’이란 연호를 쓴 적이 있는데, 이 거울은 틀림없이 전촉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 조광윤은 어이없는 듯 웃으며 말했다.
「건륭(建隆) 말년에 재상에게 연호를 바꾸라고 했을 때, 이전 왕조들이 쓴 적이 없는 연호를 선택하라고 특별히 당부했었소.

당시 범질(范質), 왕부(王溥), 위인포(魏仁浦) 등 3명의 재상들은 다 전촉의 왕연이 ‘건덕(乾德)’ 연호를 쓴 사실을 모르고 있었소. 보아하니 재상은 반드시 공부한 사람을 써야 할 것이오.」

 

송나라를 세운 후 조광윤은 첫 번째 연호를 ‘건륭(建隆)’이라고 했다.

글자 그대로 뜻풀이하면 ‘건(建)’은 ‘창건하다, 건립하다’라는 뜻이고, ‘륭(隆)’은 ‘융성하다’라는 뜻이므로 ‘건륭’의 본뜻은 ‘융성발전의 시대’라는 뜻이다.
 
962년 즉 건륭 3년 말에 조광윤은 3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대내외적 환란을 제거했기 때문에 새로운 원년(元年)을 시작한다는 뜻에서 연호를 바꾸도록 명을 내렸던 것이다.

‘건덕(乾德)’은 사실상 창의성이 있는 연호였다. ‘건(乾)’은 ‘지고 지대한 하늘, 제왕, 지아비’를 가리킨다.
 
‘건덕(乾德)’이란 “앞으로 대덕(大德)이 나타날 것이고, 천하는 황제의 은덕으로 가피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재상들은 학식이 높은 사람들이었으나 역사를 소홀히 하고 서적을 잘 인용하지 않은 데서 전촉왕 왕연과 같은 연호인 ‘건덕(乾德)’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송나라는 6년간이나 전촉과 같은 ‘건덕’을 연호로 사용했다. 조광윤은 마음이 넓고 인자한 황제이었으므로 더 이상 문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