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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53] 이수 ‘가을생각’

가을은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지

별리가 순리이니

꽃들도 잎들도 햇살도 한곳에 멈추지 않아

바람이 곁에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어제의 강물이 오늘의 강물이 아니니

고이는 것은 썩는 것.

 

지금 마주서 있는 당신과 나

당신 생각이나 내 생각이

언제까지나 같기를 바라는 것은

삶의 배반이 아닌가

곱게 물든 단풍미인 같은 당신을

살며시 놓아주고 싶어.

 

내가 너무나 사랑하고 있기에

시들고 썩는 당신 모습 보고 싶지 않아서

돌아서는 당신이 보고파도

가슴 아련히 아련히 저며질지라도

마르지 않은 고운 당신 모습

그대로 오래 간직하고픈 생각으로 놓아주고 싶어.

 

- 이수, 시 ‘가을생각’

 

이번 칼럼에서는 가을 계절과 딱 맞는 ‘가을’을 주제로 한 이수(본명 송달웅) 시인의 ‘가을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9월은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시절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이수 시인을 한 번쯤 마주할 필요가 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언제까지나 당신 생각과 같기를 바라던 시인은 그것이 자신의 욕망일 뿐임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을 놓아주는 게 결실인 것을 알고 놓아주기로 결심한다.

 

사랑했던 사람도 때가 되면 늙고 볼품 없어질 모습을, 썩는 당신 모습으로 낙엽과도 같이 비유하고는, 봄 한철 파릇한 나뭇잎처럼 싱그럽고, 생동감 넘치는 잎새를 상대방의 젊은날로 회상하는 게 이 작품을 읽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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