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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51] 이형기 ‘산(山)’

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 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뜨고

방심무한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깍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도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 버린 채

어쩌면 눈물어른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아롱진 윤곽

아 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이형기, 시 ‘산(山)’

 

‘기자’로도 활약했고 ‘평론가’로도 활약했던, ‘진주가 낳은 문학가’ 이형기 시인의 세 번째(시담 칼럼 기준) 작품인 ‘산’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동안 이 시인의 작품인 ‘낙화’와 ‘대’를 소개한 바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산’은 정적인 시이지만 내면에는 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비에 젖은 가을 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적 수난사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게 문학계의 중론이다. 겉으로는 조용한 듯 싶으나 내적으로는 강렬한 저항 의지를 담은 작품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해 요하전, 살수전,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등을 직면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시련을 겪었고, 싸우고 이겨냈다. 깍아지른 절벽이 완만한 곡선 아래 눌리듯, 외세 침략이 아무리 강렬할 지라도 백의민족 홍익인간 정신 아래에 눌릴 것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아울러 2020 도쿄올림픽이 최근 막을 내렸으나 장애인 선수들이 출전하는 2020 도쿄 패럴림픽은 오는 24일 시작된다. ‘올림픽에서는 영웅이 탄생하고, 패럴림픽에서는 영웅이 출전한다’라는 명언이 있다. 우리나라 패럴림픽 출전 영웅들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선사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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