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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50]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 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 서정시의 전통적 음색을 재연하면서도 소박한 일상과 자연에서 시 소재를 찾아 섬세한 가락을 만든 박재삼 시인의 작품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소개하고자 한다. 1933년 4월10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박 시인은 이후 경남 삼천포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은사 김상옥 선생을 만나 문단 생활에 발을 디딘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역시 제삿날을 맞아 큰집에 찾아가며 저녁 노을에 젖은 가을 강을 바라보면서 인생에 대한 상념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인생의 유한성에 대한 근원적인 한을 보편적인 자연현상인 강물의 흐름을 보면서 삶을 비유한 작품이라 하겠다. 산골물이 첫사랑이라면 바다에 다다를 강물은 인생에서 노년에 해당함을 뜻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15일 제76회 광복절을 맞이해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축사를 박 시인이 마주했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문 대통령은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사서울 284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사 때 “지난 6월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개발도상국 중 최초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격상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아마 박 시인은 박수를 쳤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우리의 한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던 박 시인. 그런 박 시인의 열정이 녹아든 대한민국은 지금 선진국가 문턱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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