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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 마애불과의 만남 5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보물 제 981호)

 

(시사1 = 김재필 기자) -고려가 자주국임을 천명했던 고려황제의 만세를 염원한 마애불 -

 

코로나19가 좀 뜸해진 여름초입에 올림픽대교를 건너 하남방향으로 30여분 달려 네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하남시 교산동에 위치한 선법사를 찾았다.

 

절집 마당에 들어서니 오른쪽 앞쪽에 백제의 온조왕이 마셨다는 전설이 깃든 작은 샘인 ‘온조왕 어용샘’과 작은 폭포 옆에 위치한 2m 정도 크기의 편마암인 삼각형 바위에 선각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조각 작품인 ‘마애약사여래좌상’이 단아하면서 절제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앞면을 자세히 보니 다른 마애불에서 보지 못했던 점점이 정으로 쪼은 작은 점들이 보인다.

그렇다! 1884년 5월에 점묘법을 처음 작업에 도입하여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그림을 그려 화제를 불려 모았던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Pierre Seurat)의 점묘법보다 무려 1,000여년이 앞선 기법 아닌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선조들의 예술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로 51 cm 세로 94 cm 크기의 약사여래좌상은 특이하게도 복판의 앙련좌를 이중의 대석을 이중으로 새겨 넣고, 중대에는 4개의 모서리 기둥이 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그 밑에 또 이중의 대석과 단판복련좌가 새겨진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지그시 내려 뜬 눈, 인자한 얼굴 모습을 하고 있는데, 머리는 민머리(素髮 소발)이며 위에는 육계(肉髻)가 표현되었다.

 

왼손에는 약사여래임을 알려주는, 중생을 치유해주는 묘약이 담긴 약사발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3중의 머리광배와 몸 광배를 계단식으로 표현하였고, 주위에는 찬연한 불꽃무늬가 둘러져 있으며 왼쪽 어깨에만 걸쳐진 불의(佛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양식으로, 옷 주름 표현에서는 가지런함이 엿보인다.

 

불의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왼쪽 어깨 자락이 가슴 부분에서 크게 반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매우 특이한 예라고 한다.

 

마애약사여래좌상 우측 하단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양식이다. 명문의 내용은 " 太平二年丁丑七月二十九日 賜以重修爲上皇帝萬歲頌 (태평2년정축칠월이십구일사이중수위상황제만세송)" 으로 이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조성된 고려 경종 2년(서기 977년)경에는 중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주국으로써의 황제로 칭하며 왕의 만세를 불렀던 것으로 보아, 고려왕(경종)을 칭송하고 왕의 안위가 그 지역 백성들의 안위였기에 이런 명문을 새겨놓지 않았을까?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둘러보고 다시 ‘온조왕 어용샘’에서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려다가 시기(코로나 시기)가 시기인지라 마시지 못하고 문뜩 온조왕의 어머니이며 과부로써 주몽과 결횬했던 ‘소서노’도 이 물을 마셨을까? 하는 짓궂은 생각이 든 것은 코로나로 인해 별로 웃을 것이 없는 요즘에 정약용처럼 독소(獨笑)라도 해 볼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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