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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45] 조지훈 ‘승무’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 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시 ‘승무’

 

이번 칼럼에서는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를 소개하고자 한다. 1920년 12월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난 조 시인은 식민지 치하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전쟁의 비극적 국면을 시화한 인물로 정평이 났다. 더욱이 정지용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자연과 인공의 극치’라고 말하고, 우리말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시라고 조지훈 시인의 작품들을 극찬했다. 특히 이 작품은 조 시인이 20세일 때의 일이다. 그의 시적 천부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혹자는 위 시를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 꽃’과 더불어, 4년간 400번 퇴고를 거듭했다고도 한다. 예술가는 창조적 고뇌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도 하겠다.

 

아울러 조 시인의 ‘승무’를 소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조만간 진행될 도쿄올림픽과도 연관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이달 23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다. 관련 언론 보도 중 청와대가 11일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참석 여부를 놓고 일본측에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날렸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풀어야 할 주요 현안 중 최소 하나의 현안에 대해서는 성의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경우에만 문 대통령의 방일 일정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풀어야 할 주요 현안은 일본군 피해 할머니 문제(위안부), 강제징용노동자 문제, 일본 수출 규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이다. 현 정권이 일본 정부와 원활한 외교를 통해 주요 현안들을 해결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그래야만 조 시인의 ‘승무’를 읽을 때 가슴 아픈 마음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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