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윤여진 기자 |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검토해온 호르무즈 해협 군 병력 및 군사 자산 파병 준비에 다시 속도 조절에 들어간 모습이 포착됐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재격화한 데다 국내에서도 파병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이란까지 공개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내면서 정부가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방부는 7일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의 조속한 회복과 중동의 평화·안정을 위한 실질적 기여 방안을 미측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현재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파병 문제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히며 준비가 상당 부분 진전됐음을 시사했지만, 다시 “결정된 것이 없다”는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의 전황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동안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던 미·이란 간 무력 충돌은 지난달 30일 미군이 약 한 달 만에 공습에 나서면서 재점화했다. 지난 주말에는 양측이 군함과 유조선 등을 겨냥한 공격을 주고받으며 보복전 수위까지 높아졌다.
정부는 분쟁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를 전제로 파병을 준비해왔지만, 현지 상황이 급변하면서 실제 파병 결정에 신중해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내 정치권의 반대 목소리도 변수다. 국방부가 파병 준비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권과 충분한 조율 없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여권 내부에서도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용납할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의원이 나왔고, 범여권 진보 정당들도 적극적인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군부대 해외 파병을 위해서는 국회의 파병 동의안 의결이 필요하다. 아직 여당 내부의 이견 조율도 이뤄지지 않은 만큼 당장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차 개각에 따른 국무위원 후보자 인사청문회 일정과 다음 달 시작되는 국정감사 등을 고려하면 이달 안에 파병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이란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에 한글로 글을 올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면서도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가이 대변인은 군함이 떠 있는 해협을 배경으로 ‘위험한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라는 한글 문구와 경고 표시로 추정되는 표지판을 합성한 사진도 함께 게시했다.
앞서 지난 4일 익명의 이란 고위 관리가 중동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파병 검토에 경고 메시지를 낸 데 이어, 이번에는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직접 한글로 경고를 발신한 것이다.
전쟁 발발 이후에도 테헤란에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주이란대사관을 유지하는 등 대이란 관계에 공을 들여온 한국으로서는 이란의 반발까지 감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단 정부가 미국의 요청을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는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와 핵추진잠수함 핵연료 협상,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 한미 간 협상이 필요한 현안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동맹국인 한국이 미국을 제대로 돕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기여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의 압박도 낮아지기보다 커지는 상황이다.
급기야 지난달 17일에는 한 해에 두 차례만 실시하는 전구급 한미연합연습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도록 지시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 준비를 구체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8일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이 자리에서 호르무즈 파병 논의가 구체화할 가능성도 있다.
군 당국은 최근 상황을 반영해 실제 파병이 결정될 경우 투입할 군사 자산 후보군도 다시 조정하고 있다. 당초 유류와 탄약 등 군수품을 지원할 수 있는 해군 군수지원함이 우선순위로 거론됐지만, 군수지원함 운용을 위해 100여명의 승조원이 필요하고 노후도도 높다는 점 등을 이유로 후순위로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넓은 해역을 감시하면서 잠수함과 수상함을 탐지·타격할 수 있는 해상초계기를 비롯해 폭발물처리반(EOD), 무인 기뢰 탐색·제거 장치 등이 파병 후보군으로 검토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투입 자산은 우리가 한 번도 확정한 적 없고, 수요에 따라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형식이 아니라 안전하게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