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김아름 기자 | 20년을 한 집에서 산 사람에게 “이제 나가달라”고 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20년 전보다 집값과 전셋값이 크게 오른 서울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입주민들의 막막함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장기전세주택의 ‘20년 원칙’을 지키겠다고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
장기전세주택은 처음부터 최장 20년 거주를 전제로 설계됐다. 최초 모집공고와 임대차계약서에도 최대 거주기간과 분양 전환 불가 조건이 명시됐다. 최근 서울시 역시 20년이 지나면 기존 계약에 따라 퇴거하는 것이 원칙이며, 별도의 계약 연장이나 분양 전환 제도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엇보다 공공임대주택은 ‘한 번 들어간 사람의 집’을 만들어주는 제도가 아니다. 한정된 공공주택을 무주택자들에게 순환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20년을 채운 입주민에게 다시 계약을 연장해주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만기를 앞둔 입주민들도 같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9361가구가 차례로 20년 거주기간을 채울 예정이다.
결국 한 가구의 계약을 연장하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천 가구의 공공주택을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지의 문제다.
더구나 장기전세를 기다리는 무주택자들이 적지 않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주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기존 입주민의 계약 연장이 곧 자신의 입주 기회가 사라지는 일이 될 수 있다. 공공주택 정책에서 어느 한쪽의 사정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분양 전환 요구 역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장기전세는 애초 분양 전환을 전제로 공급된 주택이 아니다. 지금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과거 계약의 조건을 뒤집는다면 향후 공공임대 정책의 예측 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물론 기존 입주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특히 20년 전 입주한 고령자나 장애인, 저소득층 등이 계약 종료와 동시에 갈 곳을 잃는 상황은 정부와 서울시가 별도로 살펴야 한다.
하지만 해법은 ‘20년 원칙’을 없애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공공임대주택과의 연계 등 별도의 주거 지원책을 마련해 취약계층의 주거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보다 합리적이다.
공공정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누군가의 간절한 사정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장기전세 입주민들에게 2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장기전세를 기다리는 무주택자에게도 오늘의 기다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20년 전 서울시가 장기전세를 시작하며 약속한 것은 특정 가구의 영구적인 주거권이 아니라 무주택자에게 장기간 안정적인 주거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첫 만기를 맞은 장기전세가 지켜야 할 것도 결국 그 약속이어야 한다. 20년을 채운 입주민에게는 충분한 이사 준비와 취약계층 지원을, 그 집에는 새로운 무주택자에게 다시 한 번 주거 안정을 누릴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공공주택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실의 어려움을 보듬는 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