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친구도 적도 아닌 시대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었다.

 

한때 도버해협 사이에 두고 피를 흘리며 싸웠던 프랑스와 영국은 오늘날 핵심 동맹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건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 일본은 이제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함께 떠받치는 파트너다. 반대로 이념과 혁명을 공유했던 중국과 소련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무력 충돌까지 벌였다.

 

국제정치는 원래 그런 세계였다.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우정도 증오도 아니다. 결국 국익이다.

 

21세기에 들어 이러한 현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냉전 시절처럼 적과 동지가 선명하게 구분되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협력하면서 경쟁하고,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복합적 관계로 움직인다. 국제정치학자들이 말하는 '프레네미(Frenemy)'의 시대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라는 뜻이다.

 

이 변화는 한반도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교차로에 서 있다. 안보는 미국과 연결돼 있고, 경제는 중국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일본과는 안보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역사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느 한 나라를 친구로만 규정하거나 적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중 관계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며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중국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안보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드 배치 이후의 경제 보복, 동북공정 논란, 서해를 둘러싼 갈등은 중국이 협력 대상인 동시에 경계해야 할 전략적 경쟁자임을 보여준다.

 

한일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중국·러시아라는 안보 현실 앞에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 문화와 관광, 민간 교류도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그러나 독도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는 여전히 양국 관계를 흔드는 변수다.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협력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

 

한미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형성된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안보의 기둥이다. 그러나 경제안보의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 역시 철저하게 자국 이익을 우선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은 동맹과 국익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흔히 두 가지 오해가 나타난다.

 

하나는 특정 국가를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낭만적 동맹론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국가를 영원한 적으로 규정하는 감정적 민족주의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문제다. 국가 간 관계를 우정이나 증오의 감정으로 해석하는 순간 현실을 읽는 눈은 흐려진다.

 

중요한 것은 어느 편에 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느냐다.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협력도 관리해야 한다. 일본과 역사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미래 협력의 공간도 넓혀야 한다. 이것은 기회주의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현실주의적 선택이다.

 

21세기 국제질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미·중 경쟁은 장기화되고, 공급망은 재편되고 있으며, 기술과 안보는 하나로 결합되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감정보다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외교는 선의가 아니라 힘으로 말하고, 국가는 이상이 아니라 국력으로 살아남는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것은 국익뿐이다. 친구의 얼굴을 한 적과 적의 외피를 두른 친구가 공존하는 프레네미의 시대,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국력과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국익을 지키는 나라는 살아남고, 감정에 휘둘리는 나라는 흔들린다. 프레네미 시대의 냉혹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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