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방장관(地方長官)을 무관에서 문관으로 교체
송태조 조광윤이 평화적 군사병변의 방식으로 후주를 교체해 송나라를 세운 직후, 절도사 이균과 이중진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때 상산(常山)의 성덕군(成德軍)절도사 곽숭(郭崇)은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조정의 입장에서 볼 때 마음 놓을 수 없는 문제였다. 960년(태조1) 여름, 조광윤은 공을 들여 곽숭을 조정으로 불러들이고, 선휘남원사(宣徽南元使) 구거윤(咎居潤)을 그 자리에 권지진주(權知鎭州)로 임명했다.
이것은 조광윤이 처음으로 문관을 지방장관으로 임명한 사례로서, 문신치국(文臣治國)의 목표를 향해 내디딘 고귀한 첫 걸음이었다.
이때부터 문관이 주정부의 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조광윤은 문인정치를 실시한지 1년이 채 안 되어 사방의 절도사들은 거의 다 그에게 귀순했다.
그리하여 그의 문인정치로 천하를 다스리는 정책은 신속히 시행되었다.
960년(태조1) 10월에 송태조 조광윤은 문관 이처운(李處耘)을 권지양주(權知揚州)로 임명했다.
이번은 이중진 반란을 평정한 후에 병마도감(兵馬都監)으로 있는 그를 지주(知州)로 임명한 것이다.
오래 동안 조광윤의 참모로 있은 이처운은 보기 드문 문무겸전의 인재였다. 그를 지주로 임명한 것은 조광윤이 출병하기 전에 이미 계획한 바였다.
961년(태조2), 조광윤은 상서좌승(尙書左丞) 고방(高防)을 권지진주(權知秦州)로, 태상경(太常卿) 변광범(邊光范)을 권지양주(權知襄州)로 임명했다. 변광범은 유능한 문인으로서 재정을 잘 관리할 줄 아는 관리로서, 그를 권지양주로 임명한 것은 조광윤에게 다른 목적이 있었다.
당시 양주(襄州)절도사로 있는 모용연소는 조광윤의 계획에 따라 형남과 호남을 평정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출정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번 전쟁은 건국 이래 후주지역 이외의 땅을 정복하는 최초의 전쟁이었다.
조광윤은 재정을 관리할 줄 아는 변광범을 권지양주로 임명하면 틀림없이 모용연소를 도와 대군의 후방보급 업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963년(태조4) 초, 모용연소는 형남과 호남을 통일시키기 위한 전쟁을 개시했다. 변광범은 과연 맡은 바 역할을 잘 수행하여 군량과 마초를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전쟁의 순조로운 진행을 보장했다.
형남과 호남을 연이어 평정한 후 조광윤은 이미 세운 방침대로 새 통치구역에 문관을 지방장관으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