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지내던 어르신, 남편을 먼저 보내고 자녀들은 외국에 사는지라, 내가 어머니 같이 모신 분이신데, 갑작스럽게 병이들어 자녀들을 대신해서 유언을 들었다.
유언 중에 “나 평생을 살면서 미안한 것이 하나 있다. 남편? 나보다 먼저 보냈지만 미안하지 않다. 할 만큼 했다.
아이들? 아니다. 최선을 다해 돌보아 외국까지 가서 사는데, 정작 내가 죽는 순간에 곁에 없고 자네가 내 곁을 지키지 않나? 정말 미안한 것은 나에게 미안하다.
남편 모시느라 아이들 돌보느라 정작 나를 무시하고 산 것이, 내 몸이 원하는 음식, 옷 무시한 것이, 내 마음 따라 살아보지 못한 것이, 나에게 얼마나 미안하지 모르겠다. 순옥아 이제 자기에게도 잘해주며 살아라”. 이 말씀이 두고 두고 내 가슴을 울렸다.
나 아내 자리 30년, 엄마 자리 29년째다. 결혼 20년 동안 내 삶이 없었다. 내 삶은 오직 가족을 위한 희생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내 자신의 의식주를 희생하고 남편을 위해 나의 감정을 희생시켰다.
나의 행복은 언제나 3순위 아니 내 순위조차 없었다. 아이들과 남편이 먼저였다. 그래야 가정이 굴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년을 살던 어느 날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울증 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점점 살아갈 의욕이 사라졌다. 이러다가 죽겠지 슬프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애들 생각하며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도대체 나와 남편 사이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싶었다.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하나 의구심이 먹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정말이지 죽고 싶고 그리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살려고 배우려 나갔다.
그 배움 10여 년이 나를 살렸다.
배우면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가면서, 남편을 알아가면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씩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행복해지기 시작하면서 가정이 변하고, 미세하게나마 남편도 변해갔다. 아이들도 변해갔다.
비로소 깨달았다. 무조건적인 내 희생이 나와 가족을 벼랑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을. 이제 알겠다. 아내가 행복해야 남편도 행복할 수 있음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음을. 여자가 행복해야 세상이 행복할 수 있음을.
내가 행복하려면 내가 나를 존중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남편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겠는가? 내가 나를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 남에게, 남편에게 대접받기를 기대하지 말라. 내가 나에게 종종 옷사주고, 밥사주고, 영화 보여주고, 여행보내주라. 남편과 아이들에게 쓸 것 조금 줄여서라도. 여자가 행복해져야 세상이 행복해진다. 내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내 행복은 내가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