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파탄에 책임있으면 이혼 청구 못한다, 대법원 유책주의 판결내려

  • 등록 2015.09.16 02: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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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7대6 팽팽한 대립... 향후 파탄주의 대비해 이혼 제도 개선 필요

 

혼인 관계에 파탄을 가져온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하지 못하는 ‘유책주의’가 여전히 지켜졌지만, 점차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불륜을 하고 12년간 부인과 별거생활을 지속해온 백모씨(68)는 이혼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과 2심 재판부는 유책주의 원칙에 의거해 백씨가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백씨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15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공개변론까지 진행했지만 백씨의 이혼 청구는 또다시 기각되었다. 이로서 이혼청구소소에서의 ‘유책주의’는 50년간 지켜지게 되었다.

하지만 대법관의 의견은 7대 6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유책주의 원칙이 아닌, 혼인관계 파탄으로 인해 회복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파탄에 책임이 있더라도 이혼을 허용해주어야 한다는 ‘파탄주의’가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유책주의를 관철한 이유는 여전히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의 생활능력 차이를 보완하기 위한 부양제도 등이 마련되지 않아 약자를 보호할 제도적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서는 이혼을 하더라도 당사자가 5~10년간 부양을 해야한다는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으며,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어도 미성년인 자녀와 배우자의 생활환경등을 고려해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있다.

한국 역시 유책주의로 이혼을 막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법원도 1987년부터는 ‘오기나 보복의 감정으로 이혼에 응하지 않는 경우’와 ‘이혼 청구인의 책임이 상대방보다 크지 않은 경우’에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에게도 이혼을 허용해왔다. 2010년도에는 불륜을 저지른 74세의 남편이 46년간 별거해온 부인과 이혼을 청구하자 ‘오랜 세월이 흘러 원고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없다’며 청구를 받아들여준 판례도 있어, 점점 파탄주의로 변화해나갈 전망이다.

이번 판결에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많은 가정들이 남성과 여성의 임금차이가 여전하고, 육아와 직장생활의 양립이 힘든 상태”라며 “한국도 언젠가는 파탄주의로 변할 텐데, 이를 위해 이혼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고 측 법률대리를 맡은 김수진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대법원이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파탄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석화 기자 th2004@g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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