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박은미 기자 | 권력은 비판을 견디는 힘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비판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치인과 공직자, 심지어 법관까지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는 인식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검 수사로 드러난 정황은 충격적이다. 당시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향해 “빨갱이”라고 표현하며 비상계엄 필요성을 언급하고, 이에 반대 의견을 낸 국방부 장관을 전격 교체했다는 대목은 단순한 일탈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는 군 통수권을 개인적 감정과 정치적 불만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계엄 인식이다. 계엄은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지,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윤 전 대통령은 반대 세력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군의 개입을 언급했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력 인식과도 배치된다.
인사 역시 마찬가지다. 반대하면 배제되고, 충성하면 기용되는 구조는 행정부의 판단력을 약화시키고 제도의 자율성을 훼손한다. 국방부 장관 교체가 정책 실패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계엄 반대’ 때문이었다면, 이는 명백히 권력의 사유화다.
윤석열 정부는 줄곧 ‘법치’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법치는 권력자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장치가 아니라, 권력자를 제약하는 시스템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린 법관을 체포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사실로 굳어진다면, 이는 법치의 언어를 빌린 권위주의에 불과하다.
대통령은 국가 최고 권력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절제의 의무를 지닌 자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문제는 실언이나 과격한 표현이 아니다. 비판을 적으로 간주하고, 제도를 장애물로 인식하며, 군과 공권력을 정치적 해결 수단으로 바라본 인식 그 자체다.
이번 특검 수사는 개인의 책임을 묻는 데서 끝나선 안 된다. 왜 이런 인식이 제어되지 못했는지, 권력 내부의 경고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까지 돌아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에 더 큰 대가를 치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성과도, 실패도 아니다. 권력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쉽게 위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는 점이다. 그 교훈을 잊지 않는 것이 남은 이들의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