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충수의 세상을 밝히는 힘(6)] 디지털 성범죄의 그림자: 통계가 말하는 현실과 딥페이크의 위협

  • 등록 2025.05.31 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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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만든 영상은 가짜지만, 피해자가 입는 고통은 진짜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발전은 정보의 공유와 접근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우리는 손끝 하나로 세계의 정보를 얻고, 실시간으로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디지털 환경은 동시에 새로운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디지털 성범죄다.

 

이전까지의 성범죄는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지털 성범죄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익명성과 무한한 확산력을 기반으로 한다. 피해자는 얼굴조차 모르는 가해자에게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당하며, 그 피해는 단 한 번의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 삭제되지 않는 영상과 흔적은 피해자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2024년 발표된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10,305명으로 전년보다 14.7% 증가했다. 피해 영상물 삭제 요청 건수도 30만 건에 달했으며, 그 중 4분의 1은 피해자의 이름, 연락처, 주소 등 개인정보가 함께 노출된 경우였다. 이는 피해자에게 단순한 수치심을 넘어서 2차, 3차 피해로 연결되는 구조적 고통을 안긴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피해자의 낮은 연령대다. 전체 피해자의 약 80%가 10대와 20대인데, 이 중 10대 피해자가 무려 27.8%에 이른다. 이는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SNS, 메신저 등을 통해 더욱 쉽게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법적 인식이나 대응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자살 충동, 우울증 등의 후유증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급증하고 있는 범죄 유형이 바로 딥페이크를 활용한 성범죄다. 딥페이크 기술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사람의 얼굴이나 음성을 조작해 가짜 영상이나 음성을 만드는 기술이다. 문제는 이 기술이 포르노 영상에 특정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데 사용되면서, 성범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기준, 딥페이크 관련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전년 대비 무려 227.2% 증가하였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구조적 범죄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피해자가 실제로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상만으로 명예가 실추되고, 사회적 관계까지 파괴될 수 있다. 이 피해는 오히려 실제 성범죄보다 더 무섭고 오래 지속되며, 법적 대응 또한 복잡하고 더디다. 현재 한국에서는 딥페이크를 통한 음란물 제작 및 유포에 대해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기술의 속도에 비해 법과 제도는 아직 느리기만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법적 제도 정비와 강화가 시급하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기존의 음란물 유포나 명예훼손법으로는 포괄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인공지능 악용에 특화된 처벌 규정이 필요하며,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기술적 대응 역량 강화도 필수적이다.

피해 영상물의 실시간 추적 및 삭제, 원본 판별 기술, 유포 경로 차단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 IT 기업이 협력하여 기술 기반의 예방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피해자 중심의 지원 체계 확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피해자들은 단순한 영상 삭제로 회복되지 않는다. 법률 상담, 심리 치료, 사회적 복귀까지 이어지는 종합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청소년 피해자에 대해서는 학교,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보호망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사전 예방을 위한 교육과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

단지 ‘성범죄를 하지 말라’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어떤 행동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지를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 특히 디지털 시민의식, 성적 자기결정권, 피해자 관점의 사고 훈련이 강조되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디지털 사회 전체의 윤리와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이며,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해결을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하며,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법과 기술, 문화가 함께 변화발전할 때 비로서 어두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

범죄는 기술을 따라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기술에 맞서는 법과 윤리의 진화가 필요할 때다. 

하충수 기자 cody3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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