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늙어서 머리 희어지고 잠이 많아져 난롯가에서 졸게 되거든 이 책을 꺼내서 천천히 읽으라, 그리고 꿈꾸라, 한때 그대 눈이 지녔던 부드러운 눈빛을, 그리고 깊은 음영을. 그대의 매력적인 순간들을 얼마나들 좋아했으며, 진정이든 거짓이든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는지를, 그러나 한사람은 그대의 유랑혼을 사랑했고, 그 변해가는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는지를. 그리고 난롯불에 붉게 빛나는 방책 옆에서 몸을 굽히고 중얼거리라, 조금 슬프게, 사랑이 저 위 산을 걷다가 그 얼굴을 별무리 속에 감추었다고. -예이츠, 시 ‘그대 늙어서’ 이번 칼럼에서는 아일랜드의 문호이자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예이츠 시인의 작품 ‘그대 늙어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예이츠 시인은 186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화가의 아들로 세상에 눈을 떴다. 그의 이번 작품은 젊어서 만났던 애인을 늙어서 회상하는 방식의 시로 알려졌다. 젊었을 때 그대의 외모를 좋아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늙은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예이츠 시인은 상대방의 늙음도 사랑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애인으로 하여금 읽어보라고 한다. 사랑이 달아나 산등성이를 걷다가 별무리 속으로 사라졌다고, 그는 이미 어떤 결론에 도달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넘어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에서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덴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엘리엇 시 ‘황무지-죽은자의 매장’ 이번 칼럼에서는 영어로 쓰인 ‘최초의 현대시’로 불리는 엘리엇 시인의 황무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888년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귀화한 엘리엇 시인은 모더니스트 작가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모더니스트란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을 의미한다. 즉 엘리엇 시인의 작품들은 시인이 살던 당시를 예술로 만들어낸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황무지’도 그렇다. 엘
나는 아름다워라, 오 덧없는 인간들! 돌의 꿈처럼 저마다 거기서 상처받는 내 유방은 질료처럼 영원하고 말없는 사랑을 시인에게 불어넣게 되어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스핑크스처럼 창공에 군림하네. 백조의 순백에 백설의 마음을 결합하고, 선을 흔들어 놓는 움직임을 싫어하며, 나는 울지 않고 결코 웃지도 않네. 우뚝솟은 기념물에서 빌은듯한 내 당당한 태도 앞에 시인들은 준엄한 연구로 그들의 세월을 탕진하리! 이 고분고분한 애인들을 홀리기 위해서 만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거울을 가졌네. 내 눈, 영원의 광택을 지닌 커다란 두 눈을! -샤를 보들레르, 시 ‘미’ 이번 칼럼에선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작품 ‘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18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보들레르 시인은 ‘1845년의 살롱’을 통해 비평가로 먼저 문학계에 발을 디딘 인물이다. 날카로운 비평가인 보들레르 시인의 ‘미’를 소개하는 이유는 무생물의 생물화를 아름답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미’가 나타나 한 줄기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어서 소개하게 됐다. 최근 훈훈한 아름다움을 언론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됐다. 서울 송파구 인근 영화관에서 수표 1
이제 며칠 후엔 눈이 오겠지. 지난해를 회상한다. 불 옆에서 내 슬픔을 회상한다. 그때 무슨 일이냐고 누가 내게 물엇다면 난 대답 했으리라 - 날 그냥 내버려둬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난해 내 방에서 난 깊이 생각했었지. 그때 밖에선 무겁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쓸데없이 생각만 했었지. 그때처럼. 지금 난 호박 빨부리의 나무 파이프를 피운다. 내 오래된 참나무 옷장은 언제나 향굿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난 바보였었지. 그런 일들은 그때 변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가 일고 있는 일들을 내쫓으려는 것은 허세이니까. 도대체 우린 왜 생각하는 걸까. 왜 말하는 걸까. 그건 우스운 일이다.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입맞춤은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린 그걸 이해하는 법. 친구의 발자국 소린 다정한 말보다 더 다정한 것. 사람들은 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별들은 이름이 필요 없다는 걸 생각지도 않고, 어둠 속을 지나가는 아름다운 혜성들을 증명하는 수치들이 그것들을 지나가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을. 바로 지금도 지난해의 옛 슬픔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거의 회상하지도 못하는 것을. 지금 이방에서 무슨 일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 날 그냥 내버려둬요. 아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름다운 저녁 성스러운 이 시각이 찬송으로 숨죽이는 수녀처럼 조용하이. 큼지막한 저녁해가 고요 속에 지고 있고 바다 위에 내려 앉은 평온한 하늘 귀 기울이라. 생시의 하느님은 끝없는 동작으로 영원히 천둥소리를 내고 있도다. 나와 함께 이곳을 거닐며 있는 귀여운 아이, 귀여운 숙녀야 엄숙한 생각에 상관 없는 듯 보여도 네 성품은 여전히 성스럽구나. 너는 일 년 내 아브라함의 가슴 속에 있고 사원의 성역에서 기도하고 있으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하느님은 너와 함께 계시는 도다. -윌리엄 워즈워스, 시 ‘아름다운 저녁’ 이번 칼럼에서는 영국이 배출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 ‘아름다운 저녁’을 소개하고자 한다. 워즈워스 시인은 1770년 영국 서북쪽 스코틀랜드 근처 소읍인 코커머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1787년 케임브리지대학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 시절 그는 친구들과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을 도보여행을 거닐기도 했다. 이에 그는 1792년 프랑스 혁명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1798년 서정담 시집을 간행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워즈워스 시인의 아름다운 저녁은 그가 1802년 가을 한 해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순간적인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슈킨,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번 칼럼에서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정평이 난 푸슈킨 시인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799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푸슈킨 시인은 ‘루슬란과 루드밀라’, ‘카프카즈의 포로’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중 저자는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통해 어려운 현실을 참고 견디며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세상이 도래한다고 강조했다. 이 시를 소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군부 쿠데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지구촌 이웃인 ‘미얀마’를 위로하기 위해서다. 현재 미얀마는 ‘미얀마 군의 날’을 맞아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 나선 시민을 군경이 무차별 진압해 1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군의 날’은 미얀마에서 일본 점령에 대한 무력 저항이 시작된 1945년 3월27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최대 규모 참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더욱 씁쓸
즐거움에 찬 젊은이여, 이리로 오라, 그리하여 열리는 아침을, 새로 태어나는 진리의 이미지를 보라. 의심은 달아났다 이성의 구름도 어두운 논쟁도 간계한 속임수도 달아났다. 어리석음이란 일종의 끊임없는 미로, 얽힌 뿌리들이 진리의 길을 어지럽힌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기에 빠졌던가! 그들은 한밤 내 죽은 자들의 뼈 위에 걸려 넘어지고, 근심밖에 모른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려고 한다 그들이야 말로 인도를 받아야 할 것이면서도. -윌리엄 블레이크, 시 ‘옛 시인의 목소리’ 이번 칼럼에서는 영국의 시인이자 미술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 옛 시인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175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블레이크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의 세계를 살았던 인물이다. 신고전주의 시대를 살아간 장본인인 셈이다. 블레이크 시인의 이 작품은 현상유지를 거부하는 노력 속에서 시작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찰했음이 문학계의 전언이다. 어려우면 어려울 수 있는 이 시를 통해 저자는 “요즘 세상살이를 보면 장님이 길을 안내하고, 함께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것 같다. 또 청렴결백한 청백리를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들이닥
저녁 노을 만큼이나 아름다우신 단미님 아이들 손잡고 가보자 저 멀리까지 겨울 철새 떼처럼 우리도 가는 거야 올망졸망 모여서 사랑얘기 나누는 철새 떼처럼 우리도 가보는 거야 최선을 다한 하루 이제는 서산 너머에서 쉬렵니다 호수에 잠긴 화왕산 빛이 있고 노을이 있고 호수가 있어 뜨거운 정열로 나의 가라앉음 노을로 솟네 내가 가면 철새들도 날아가겠지 일몰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염없이 너를 보네 아쉬움을 달래며 산 위에 쉬었다가네 희망찬 내일을 약속하며 -우태훈, 시 ‘우포늪의 저녁 노을’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의 등단시기 작품인 ‘우포늪의 저녁 노을’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인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은 황금찬 시인으로부터 시 창작 지도를 받고, 황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우포늪의 저녁 노을 역시 청록파 시인들이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을 다뤘듯 표현하기 위해 작성한 작품이었다. 5연 ‘나의 가라앉음 노을로 솟네’, 6연 ‘내가 가면 철새들도 날아가겠지’ 등이 이를 방증한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요즘 코로나로 발길이 묶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를 주기 위함이다. 현 시국에선 대부분의
반가움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신체언어인 '악수'. 이 악수의 유래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중세시대 때 기사들의 결투 문화에서 유래됐다는 해석이 가장 신빙성이 있을 터. 당시 기사들은 대부분 칼을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적을 만났을 경우는 오른손으로 칼을 빼 들어서 '적의'를 표현했다고 한다. 반면 상대와 싸울 의사가 없을 땐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내밀어 잡았다고 한다. 이처럼 악수는 적의가 아닌 선의를 보여주는 행동으로 인식됐고, 우리도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 때에 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오른손으로 악수를 해왔다. 그리고 악수를 하며 손을 잡고 팔을 흔드는 이유는 맞잡은 손의 소매 부분에 무기를 숨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행동이었고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았던 여성들은 악수를 할 이유가 없었으며 그래서 과거의 여성들은 악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악수가 선의의 표현 방법이라면 반가움을 표현하는 또 다른 신체언어로는 '포옹(抱擁)'이 있다. 서로 껴안는 포옹은 반가움을 넘어서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는 신체 언어다. 우리는 상대방을 위로해줄 때도 포옹한다. 상대의 심
어젯밤 내 꿈 속에 들어오신 그 여인이 아니신가요. 안개가 장막처럼 드리워 있는 내 꿈의 문을 살며시 열고서 황새의 날개 밑에 고여 있는 따뜻한 바람 같은 고운 옷을 입고 비어있는 방같은 내 꿈속에 스며들어 오신 그분이 아니신가요. 달빛 한 가닥 잘라 피리를 만들고 하늘 한 자락 도려 현금을 만들던 그리하여 금빛 선율로 가득 채우면서 돌아보고 웃고 또 보고 웃고 하던 여인이 아니신가요. -문효치, 시 ‘비천’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던 문효치 시인의 작품 ‘비천’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 시인은 1943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산색’이 당선돼 문단에 올랐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향가 및 시조 등을 현대적 감각으로 탈바꿈하는데 힘썼다. 문 시인이 쓴 비천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돋보인다. 비천이란 말은 어떻게 보면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이는 ‘선녀’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선지 문 시인은 “내 꿈 속에 들어오신 그 여인이 아니신가요”라는 문장을 구사했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유명인들의 발목을 붙잡는 이른바 ‘학폭(과거 학교 폭력)’과도 연관이 깊다. 각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일부 스포츠
한 다발 엮어서 보내는 이 꽃송이들 지금은 한껏 피어났지만 내일은 덧없이 지리 그대여 잊지 말아요 꽃처럼 어여쁜 그대도 세월이 지나면 시들고 덧없이 지리, 꽃처럼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우리도 간다, 흘러서 간다 세월은 가고 흙 속에 묻힌다 애끓는 사랑도 죽은 다음에는 속삭일 사람이 없어지리니 사랑하기로 해요, 나의 꽃 그대여 -롱사르, 시 ‘마리에게 보내는 소네트’ 이번 칼럼에서는 프랑스에서 ‘시의 선구자’로 불리는 롱사르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마리에게 보내는 소네트’이다. 우선 롱사르 시인은 1524년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서 태어났다. 귀족 출신으로 고전문학에 소양이 있던 아버지의 지도를 받고 프랑수아 1세의 왕실청년대 활동을 하기도 했다. 롱사르 시인은 당시 세력을 떨치고 있던 궁정시인들의 부자연스럽던 시를 비판하고, 헬레니즘의 시 개념을 도입해 문학계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롱사르 시인은 ‘목가적 사랑시’를 주로 썼다. 목가적 문학이란 ‘농촌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글’을 말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리에게 보내는 소네트’는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한 기욤 아폴리네르 시인의 ‘미라보
요즘 지상파와 종편 등 다수의 채널에서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트로트 경연'이다. 국민들의 사랑을 꽤 많이 받는 듯 싶다. 각 방송사에서는 자사 트로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진을 앞세워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흥을 돋우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애청자 중 한 사람으로 틈틈이 시청하고 있다. 그리고 볼 때마다 "대한민국은 예인이 넘치는 문화국가구나"하고 감탄할 때가 많다. 트로트 경연과 함께 다뤄지는 '무명가수 오디션 프로그램'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이는 새로운 색으로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잊고 있던 명곡들을 다시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니, 많은 이들로부터 '브라보'를 외치게 한다. 이번 칼럼을 빌려 무대를 장악하고 관객을 장악하고 모든 공간을 장악하는 대한민국 아티스트들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다. 당신들 덕분에 귀는 호강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참가자들의 모습과 진심에 국민은 마음의 감동과 힐링을 얻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멀어져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 메말라가는 정서에 아티스드들의 행보는 위안이 된다. 대한민국의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그들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길 열렬히 응원하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