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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부터 건국까지 긴 여정 '신화서사시'로 승화

[서평] 나해철 시인의 시집 '물방울에서 신시까지, 아침 새 빛의 나라'

“태초에는 인간이 한 가족이었고,

모든 자연이 한 가족이었다는

이야기처럼

자연과 인류는 한 가족으로 영원하게 할 수 있다면,

너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이다

너는

위대한 환웅천황인 것이다.” - 본문 시 ‘환웅천황의 홍익인간’ 중에서

 

창세의 시원을 더듬어 태초부터 환웅의 신시(神市) 그리고 단군신화까지를 상상력에 의한 예술의 경이로움을 표현한 신화 서사시집이 눈길을 끈다.

 

나해철 시인의 신화 서사시집 <물방울에서 신시까지, 아침 새빛의 나라>(솔시선, 2022년 1월)는 창세부터 우리의 건국에 이르는, 긴 시간의 여정을 신비하고 오묘하게 그렸다.

 

특히 대륙의 북방 문명의 루트의 신화를 찾아 시로 승화했고, 시를 통해 홍익인간 등과 같은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이 생성될 수 있었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인은 몽골초원에서 존재의 시원에 대한 의문과 각성을 시작으로, 우리 민족의 기원 신화의 외연을 확장시켜 나간다. 우리나라 신화에서 찾지 못한 근원적 부분과 단절된 부분들을 몽골, 만주 등에 있는 신화적 화소와 상상력으로 연결시켜 보충해, 보다 포괄적이고 단단한 신화체계를 구축한다.

 

우리의 근원을 찾는 시인의 여정은 태초의 혼돈부터 마고 여신의 출현, 천신과 인간의 탄생, 신들의 전쟁, 천인의 삶과 신들의 지상 하강, 천손족(天孫族)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신화 문화적 요소를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창세의 시원을 더듬어 우리 천손족(天孫族)의 시초가 '물방울'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혼돈 속에 양과 음이 리듬을 타고 움직이면서 서서히 천지가 열리고 물방울에서 신이 탄생한다. 이어 우주의 조화로운 리듬에서 세상이 열린다. 만물이 물에서 기원했다는 자연의 원리와 맞닿아 있는 것도 확인시켜 준다. 물방울에서 세상과 인간이 생겨날 뿐 아니라 신 역시 물방울에서 생겨난다. 자궁 안에 영원 같던 시간을 양숫‘물’에 생명을 얻는 것도 물에서 비롯된다.

 

물방울 거품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가득 찬

맑고 투명한 제 몸 안에

새로운 것이 되고자하는 새로운 박동을 이미 품고 있었다.

 

노래이기도 하고

말이기도 하고

이야기이기도 하고

생각이기도 한 것을

물거품은

진즉 잉태하고 있었다 – 본문 시 ‘물방울 거품’ 중에서

 

신화적 서사시 속의 시적 화자는 우리의 뿌리 찾기를 통해 각자의 내면에서 거하는 신성을 회복하고, 인간이 하나 되고 인간과 자연이 또 하나가 되는 그런 세상을 열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나 할까.

 

임우기 문학평론가는 평론을 통해 “나해철 시인은 이 아름다운 단군의 신화의 어두운 심연에 감추어진 태초의 창세신화를 밝히기 위해 바이칼, 몽골, 만주 등 북방의 신화들을 일일이 찾아 서로를 맞추 옹혼한 상상력을 통해 마침내 경이로운 신화서사시를 창조했다”고 했다.

 

신화학자 이안나 한국외대연구원은 “이 신화서사시는 창세부터 건국에 이르는 길고 긴 시간의 여정 속에서 벌어지는 특이점에 이르는 사건을 보여준다. 이 사건들은 인간의 정형화된 사고의 틀을 넘어 상상력이 극대화된 스펙터클한 파노라마 형태로 펼쳐진다”고 극찬했다.

 

저자 나해철 시인은 대륙 북방의 옛 문명길에 남아 있는 위의 창세신화들이 몇 가지 우리 신화 속 창세신화들과 같은 뿌리를 가진 것이라는 확신에서 시를 쓰게 됐다고.

 

그는 시를 읽고 우리의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상상의 나래를 더 넓고, 깊게 그리고 크게 가지게 되길 바랐고, 시집을 접한 어른들도 지금 이 땅의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깊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나해철 시인은 전남 나주 영산포 출신으로 1976년 천마문학상 시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를 역임했고 ‘5월시’ 동인이다. 시집으로 <무등에 올라>,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손>, <긴 사랑>, <꽃길 삼만리>, <위로>가 있으며, 2014년 4월 29일부터 페이스북에 하루에 한 편씩 올린 304편의 연작시를 묶어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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