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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과의 만남 19-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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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의 세계가 돌아오면 눈이 열릴까?

 

(시사1=김재필 기자)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진 영주는 소백산 자락에 터를 잡고 신라시대 경주 다음으로 불교가 성행했던 제2의 불국토가 아닌가 생각 될 정도로 봉우리들의 이름이 비로봉, 연화봉, 국망봉등이 있으며, 문수리라는 지명등에서 보듯 불교와 밀접한 삶과 불교 유적이 많은 지역이다.

 

봉화 북지리 마애불 탐사를 마치고 영주에 들어섰을 때는 단풍이 쇠락해지는 늦가을의 오후 햇살이 잔잔하게 서천(영주를 남북으로 가로 지른 川)에 내리 앉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애불들이 높은 산이나 호젓한 마을 뒷산에 위치 해 있듯 가흥동의 삼존불도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돌아 흐르는 지점의 남동쪽으로 향한 야트막한 언덕에서 예천쪽으로 나가는 28번 국도를 달리는 차들과 서천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주위의 옛 지역명은 ‘한절마(大寺洞)이다.

이름에서 유추 해 보건데 지금은 관공서 및 아파트등이 들어선 시가지가 됐지만 마애불이 조성 됐던 신라시대엔 큰 절이 있었던 지역으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큰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불탑이나 기왓장들이 발견됐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이층으로 쌓여진 삼각형으로 된 화강암의 제일 상층에 뒷면 암석과 틈이 벌어진 큰 암석 전면에 환조에 가깝게 높은 돋을 새김으로 조성된 본존불은 높이 3.2m로 앙련좌(仰蓮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좌상이고, 높이 2.01m의 왼쪽 보살과 높이 2.31m의 오른쪽 보살은 연화좌를 대좌(臺座)위의 협시보살상(脇侍菩薩像)은 입상이다.

 

 

본존불은 장중한 체구로 가슴은 넓고 당당하며 소발(素髮)이며 육계(肉髻)가 있고 귀는 어깨까지 내려 와 있다. 얼굴은 살집이 통통하고 얼굴 비례에 맞지 않는 큰 코는 자존감을 나타내고, 입은 작으나 양,음각의 처리가 조화를 이루어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고 있다.

 

손 모양은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으며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감싼 두터운 통견의(通肩衣)이다.

 

삼존불 모두 광배는 자연 암석에 위가 뽀족한 보주형으로 둥근 화문두광이 있으며 대좌는

무릎에 잇달아 복판연화문 8엽을 앙련으로 새겼다. 좌우 협시보살은 앙련좌 위에 천의가 새겨져 있고 왼쪽보살은 왼팔은 어깨위로 걸치고 바른팔은 배에 대고 있으며 오른쪽 보살은 두 손을 모으고 있고 보관(寶冠)에 보병(寶甁)이 새겨져 있다.

 

마애불이 있는 바위 왼쪽 하단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가 새겨져있다.

선사시대부터 생겨난 민간의 바위신앙이 불교가 들어와 마애불을 새겨 불교신앙으로 바뀌었다는 학설이 있다.

 

한편 이 마애불은 신라시대 김덕삼이라는 부자가 득남을 위해 동네의 바위에 원불(願佛)을 새겼다는 구전도 전해온다. 사람을 쳐다보거나 참배하기 위해 불상등 조상(彫像)을 볼 때 제일 먼저 쳐다보게 되는 것은 눈이다.

 

헌데 옛 사람들이 부처의 코를 떼어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고 눈을 파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속설 때문이었을까? 삼존불 모두가 휑 하니 눈이 파여 장님처럼 보여 자비로운 부처의 미소가 사라져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1,000여년을 그렇게 앉아 있는 마애불. 현세의 시끄러운 사바세계에선 눈을 닫고 다음 피안의 세계가 돌아오면 다시 눈을 다시 열려나?

 

탐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 덧 만일(晩日)이 산그르메를 만들어 마애불을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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