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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과의 만남 17-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시사1 =  김재필 기자) 경주 남산의 7대보물은 ‘삼릉계곡 석불좌상’, ‘마애관음보살상’,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마애불상군’ ‘삼릉계곡 선각마애육존불상’,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등이다.

 

경주 남산에는 신라의 경명왕, 신덕왕, 아달라왕의 큰 무덤이 있는 곳이 있는 삼릉계곡이 있다.

 

삼릉계곡의 선각마애육존불상을 탐사를 마치고 육존불이 새겨진 바위 왼쪽 위로 400여미터를 올라 가니 높이 10여미터의 큰 바위가 나타난다.

 

잠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올려다 보니 가로로 중간 부분을 끌로 판 듯 갈라진 위치에 작으나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선각여래좌상이 보인다.

 

방위계를 보니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대부분의 마애불은 동쪽이나 남쪽을 향해 있는데 드문 경우다 라고 생각하면서 자세히 보니 전체가 세련되지 못한 수법의 선각으로 단순하게 처리한 신체 위에 돋을 새김으로 얼굴만 도드라지게 표현한 도특한 기법으로 조각 되었다.

 

올라 올 때 언뜻 보니 위엄 있으나 못나 보였는데 다가서서 자세히 보니 눈읏음 치는듯 한 실눈, 우뚝하고 두리뭉실한 코,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는 우묵한 입술의 도형에서 부처라기보다는 아랫마을의 푸근한 아저씨의 인상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와 좁은 이마에 그려진 백호(白毫)가 모두 음각선으로 윤곽만 표현되었다. 눈은 깊은 홈을 파 놓은 듯 간략하게 처리하였고, 눈초리가 매우 추켜올려져 있다.

 

왼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가락을 붙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앞으로 들어 올려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이고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이며,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大衣) 자락이 몸을 따라 흘러내려 결가부좌한 다리 위로 내리뜨려졌다.

 

옷주름은 대체로 고른 간격의 계단식 주름에 가깝게 표현되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전법륜인(轉法輪印)을 하고 있다.

 

하체에는 옷주름 표현이 거의 없고, 바위 중앙을 가로지른 균열된 밑에 선각된 연꽃의 윤곽만을 선각한 연화대좌가 상 전체를 넓게 받쳐 주고 있어 전체적으로 신체 비례가 안정감을 준다.

 

안내판에 조성연대가 고려초기라고 씌여 있다.

그렇다면 신라의 불(佛)들이 남산을 점거하고 있는데 뒤늦게 합류한 남산의 막내 아닌가?

무슨 생각으로 뒤늦게 이 곳에 조성했을까?

고려의 마애불들은 대부분 바위 한 면이 다 차게 조각되어 있는데 높이 10여미터의 큰 바위에 겨우 1.2미터 크기로 조성한 것은 신라땅에 고려가 살짝 잠입 해본 것이리라

 

그런 부질 없는 생각도 잠시 왼쪽 위를 쳐다 보니 아기가 엄마품을 파고드는,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의 바위가 눈에 보인다.

올커니!

이 마애불을 여기에 조성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신라를 접수한 고려에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 중생에게 가없는 사랑을 베푸듯이, 엄마가 아기를 대하듯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살펴 달라는 뜻으로 이 바위에 새겨놓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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