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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과의 만남 16 -천안 삼태리 마애여래입상

해돋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을 석수쟁이의 마음이 담겨

 

(시사1 = 김재필 기자) 천안시에서 서남쪽으로 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는 높이 455m의 태학산(泰鶴山)이 있다.

 

이 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천안 고을 남쪽 18리에 위치 한다' 라고 기록돼 있고, 1872년 지방 지도(1872年地方地圖)에는 태화산(泰華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 지형도(朝鮮地形圖)와 한국 지명 총람에는 태화산(太華山)으로 한자를 달리해 표기하고 있다.

 

헌데 지금처럼 태학산이라고 불린 것은 이 산의 중턱에 위치한 태학사(泰鶴寺)의 이름을 따서 흔히 태학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산 모양이 학이 춤을 추는 형상 이라서 태학산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태학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잘 가꾸어진 소나무숲 산책로를 따라 1km쯤

올라가니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양쪽에 절이 보인다 왼쪽은 태학사(태고종) 오른쪽은 법왕사가 경계(담)도 없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좀 서성이다가 마애불 안내판을 보니 태학사가 관리사찰로 지정되어 있다는 내용을 보고 태학사를 찾아가니 주지스님도 출타하신듯 염불소리 조차 안 들리는 조용한 절집이다.

 

태학사는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된 사찰로 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 조사(祖師) 진산(珍山)이 산에서 내려다 본 들녘에 농번기 물을 대면 바다처럼 푸른빛을 보인다 하여 지어진 이름의 ‘해선암’을 창건 후 폐사(연도미상)되었는데 1927년에 위에 있는 마애여래입상을 친견하고 불심이 발한 춘담스님이 무가무인(無家無人)한 이 곳에 해선암을 재건(1931년)하고 공주 마곡사에서 득도 후 불사에 전념하여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인 ‘태학사’라고 개명중창 하였다.

 

절을 한바퀴 둘러보고 미륵전 뒷길로 100여m 위에 자리한 마애불을 친견하러 가는 길은 비교적 수월하다. 도중에 작은 웅덩이처럼 보이는 것이 ‘장군약수터’인가 보다.

 

나무계단을 중간쯤 오르니 웅장한 바위 중앙에 새겨진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된 높이 7.1m의 ‘천안 삼태리 마애여래입상 마애여래불이 나를 내려다 보며 반긴다.

 

신라 28대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광덕사를 창건하기 전에 이곳에 수도처로 정하고 조각하였다고 하나 전형적인 고려후기에 조성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넓적하면서도 박력 있는 얼굴, 길게 치켜 올라간 눈, 광대뼈가 나온 뺨, 큰 코와 작은 입 등의 이목구비가 매우 강건한 인상을 주고 있다. 소발의 머리는 둥글고 큰 육계도 퍽 인상적이며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 독특한 손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이런 수인은 고려시대의 미륵불상 수인들과 같은 것 이어서 불상 명칭까지 알 수 있다.

 

이 마애불은 넓은 어깨에 걸친 통견의 불의는 배 아래부터 U자형의 주름을 형성한 점이나 손목을 돌아내린 대창적인 표현 등은 거침이 없고 활달한 편이지만 선각의 평행적인 처리, 끝단의 마무리 등에는 도식화된 면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전체적인 형태나 상호, 옷 주름의 표현 등에서 고려시대의 불상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마애불상으로 중요하게 평가되어 있다.

 

돌아오는 길에 휴양림 소나무숲을 지나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 생각 난다. 달마는 결국 자신의 시원이었던 곳 동쪽을 향해 간 것이다.

그곳은 현실이 있는 사바세계이며 피안이다.

 

이 지역민들이 ’장군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는 동쪽을 향해 있어 이 마애불을 조성한 석수쟁이도 떠오르는 해를 보며 피안에 이르고 싶은 발원을 담았을 것이 아닐까?.

 

​중국 서안(西安)의 비림(碑林)박물관에 있는 ‘達磨東渡圖'에 달마가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 낙양으로 가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折葦江上客(갈대를 꺾어 타고 강을 건너는 나그네)

西來東渡人(서쪽에서 와서 동쪽으로 건너가네)

大意人人有(큰 뜻이야 누구나 있는 것이지만)

空走徒勞心(헛되히 달려 마음만 고단하게 하는구려)

 

오늘날의 달마는 가지도 않았고, 오지도 않았다. 왜냐고 물을 것도 없다. 차 한 잔 마시는 것과 같은 찰나였음을 알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찰나이고, 찰나이므로 나라고 말할 것도 없으며, 억지로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으면 되는 것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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