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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56] 신경림 ‘그 길은 아름답다’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담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 신경림, 시 ‘그 길은 아름답다’

 

이번 칼럼에서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동국대가 배출한 문학인인 신경림 시인의 시 ‘그 길은 아름답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정적인 시를 주로 쓴 신 시인의 작품에서는 농촌의 전원적인 풍경이 잘 그려진다. 산 벚꽃이 하얀길이라던가, 두엄더미 냄새라든가 등등 이러한 문장이 드러나는 사례다. 시골길을 떠나 도회지로 와서 아름다운 길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번듯하게 정비된 도회지 길은 바둑판처럼 반듯하다. 구불구불한 시골길과는 확연히 대비되기도 하다. 시골길이 곡선적이라면 도시의 길은 직선에 가깝다.

 

황량한 도시의 벌판에서 무엇인가 잡으려 하지만 집하지 않는다. 되레 아름답던 고향의 시골길이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 모두 신 시인이 쓴 ‘그 길은 아름답다’가 연출하는 분위기를 종종 느낄 때가 있다. 도시를 누비는 자동차들의 모습도 이를 방증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 기아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EV6가 다음달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유럽 출시를 앞두고 있다. EV6는 800V 고전압 시스템을 탑재해 240킬로와트(㎾)급(영국 판매 모델 기준) 초고속 충전이 가능하며, 18분 만에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고 한다. 도시 위에 보편적인 전기차 보급이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생각이나 했겠는가. 경유차가 아닌 전기차가 도로 위를 달릴 수 있을지 말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과학적 노력이 계속해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길 기대한다.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과거를 덜 아쉬워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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