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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과의 만남 12-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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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열차를 운전하는 두 부처 -

 

(시사1 = 김재필 기자)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摩崖二佛並坐像. 보물 제 97호)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국당 조성주(한국서예가협회 회장)작가가 2014년에 ‘불광(佛光)이라는 주제로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2주간 전각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2,000여일에 걸쳐 전각석에 ‘묘법연화경’ 7만여자를 새긴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한 작품이다.

당시에 나는 6년에 걸친 그의 작업과정을 촬영하면서 ‘묘법연화경’을 접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견보탑품’ 에 다보불(多寶佛)과 석가불(釋迦佛)이 허공회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도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석가여래 상주설법”(釋迦如來 常住說法)과 “다보여래 상주증명”(多寶如來 常住證明)의 장면이 있는데 석가탑은 ‘묘법연화경‘을 설하고 있는 석가여래를 상징하고, 다보탑은 그의 설법 내용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찬탄하는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중심이자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 충북의 교통은 오로지 육로로만 통한다.

 

특히 문경과 과산 지역은 충북 가운데서도 산이 많은 오지로 켜켜이 산중으로둘러싸여 있다.

속리산과 소백산맥이 뻗어 나와 경북 문경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음성, 증평으로 작은 산들이 이어진다. 고려시대에는 진천군과 괴산군이 충북 내에서도 군사, 교통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산중의 길목에 괴산군 연풍면 현풍리를 지나는 4차선 중원대로에서 빠져 나와 5분정도 가면 수안보로 넘어가는 문경세재 보다 작은 소조령 밑에 34번 지방 도로변에 지상에서 6.5m정도의 높이에 있는 작은 솔버덩(소나무가 있는 작고 평평한 언덕)에 12m의 높이에 30m정도 되는 녹색이 가미된 짙은 회색의 화강암 앞면에 고려시대에 조성된 깊지 않으나 우묵하게 판 감실에 앉힌 이불병좌상(二佛並坐像.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97호로 지정)이 있다.

 

좀 펑퍼짐한 얼굴, 사색하는 듯한 가늘고 긴 눈, 오른쪽 불상의 표정은 ‘어서 오셔유’ 하며 은근한 미소로 반겨주는 표정이며, 왼쪽의 불상은 ‘음~ 반갑네‘ 하며 짐짓 근엄함을 지어 보이는 표정이나 양쪽 모두 얼굴 전체가 평온하고 자비로운 느낌을 준다.

 

조각수법은 평면적으로 양감이 거의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얼굴 전반에 은근한 미소가 번지고 있어 완강하면서도 한결 자비로운 느낌을 준다.

 

앉아 있는 모습은 넓은 어깨, 평평한 가슴의 당당한 신체를 갖추었다. 통견의 법의주름은 좀 무딘 솜씨의 선각으로 표현되었다. 광배에는 좌우에 1구씩 위에 3구 모두 5구의 화불이 조각되어 있다.

 

참배객 서너명이 절하는 동안 전체를 둘러 본 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뷰화인더를 통해 자세히 보니 풍화작용에 의해 마모가 심하고 크고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다.

 

충주에서 자주 찾아온다는 나이드신 한 참배객(그는 마애불을 참배하고 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매달 초하루에 이 곳을 찾는다고 했다.)에게 물어보니 6.25때 총탄으로 인해 파손되었다고 하니 전쟁의 상처를 보는 듯하여 마음이 싸하다.

 

잠시 있으니 어느 사찰의 신도들인지 10여명의 참배객들이 삼배를 올린 후 나에게 목례를 하고 단체 촬영을 요청한다.

 

촬영 후 나는 그들에게 “여러분 저 위에 앉아 계시는 두 분 부처가 불국열차(바위 형태가 열차처럼 생겼다)에 여러분들을 태우고 반야심경 마지막 구절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가자 가자 어서가자 피안의 세계로...)”를 설하며 달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고 너스레를 치니 모두들 고개를 끄떡이며 마애불에서 느낀 나의 감정에 동감하고 있다는 걸 박수로 답한다.

 

그들이 떠난 후 계단 중간에서 올려다 보니 창건이념으로 숭불정책을 바탕으로 창건했던 고려시대의 불교문화, 그 문화중의 하나인 마애불에서 아우라가 장엄하게 나를 에워싸는 걸 느끼며 돌계단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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