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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17] 조지훈 ‘완화삼(玩花衫)’

차운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 시 ‘완화삼’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가 광복을 한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창립한 문인 조지훈 시인의 시 ‘완화삼’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는 조 시인이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창립하던 해에 ‘상아탑’ 잡지 5호를 통해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꽃을 완상하는 선비의 적삼이다. 이 작품은 조 시인이 박목월 시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이 시의 화답으로 박 시인 역시 ‘나그네’를 지었다. 조 시인과 박 시인은 당시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청록파 시인이란, 문학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공통된 주제로 시를 쓴 인물들을 지칭한다. 광복 후 만들어진 시라고 해도, 일제 말기를 살아가던 청록파 시인들의 입장에서 ‘어두운 현실’을 마땅히 달랠 길이 없었을 터. 따라서 자연을 소재로 본인들의 입장을 담고자 했던 것 같다. 이들 청록파 시인들은 광복 후에도 시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선지 조 시인의 완화삼은 몇 번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청록파 시인이 청록파 시인에게 시를 쓴 점 때문일까. 완화삼이란 작품은 짧은 문장들로 시가 구성됐음에도 구석구석 자연 특유의 순수성을 그대로 간직했음이 묻어난다. 더욱이 친구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이를 청록파 시인들이 선보이니 더욱 따스한 온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올 한해가 저물어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로 힘들어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인해 인터넷이 발달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서로간 거리를 두려는 성향이 짙어졌다. 언젠가 코로나19도 조 시인이 완화삼을 통해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라고 했듯 지나갈 것이다. 그때를 기약하며 지금 주변 지인들에게 편지를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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