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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8] 이상화 ‘나의 침실로’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이상화, 시 ‘나의 침실로’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이상화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나의 침실로’다. 이 작품은 이 시인 1923년 ‘백조(白潮)지’에 발표한 시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함께 시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문학계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식민지 현실에 대한 심리적 도피처로 삼았던 밀실’ 및 ‘죽음을 바라보는 관념’을 통찰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 시인은 작품에서 ‘마돈나’를 연속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만남에 대한 간절함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만남은 ‘광복’을 의미한다는 게 중론이다. 만남 및 광복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서둘러 오지 않는 ‘마돈나’로 인해 초조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마돈나’로 하여금 희망을 그리는 표현이 탁월했던 작품이라고 본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개개인별로 그리워하는 ‘마돈나’가 존재할 것이다. 마돈나를 만난 이도 있고, 아직 만나지 못한 이도 있을 터.

 

“당신은 마돈나를 만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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