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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우산이 된다는 것은……
기자수첩

누군가의 우산이 된다는 것은……

전정희 기자
입력
수정2024.11.21 03:00
전정희 작가
▲전정희 작가

 

아침부터 날씨가 조금 우중충했다. ‘우산을 챙겨야 하나? ’현관에서 우산을 챙길지 말지 잠깐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열어 오늘의 날씨를 터치했다. 날씨는 흐림, 비 올 확률이 오후 6시 20%, 8시 30%, 10시 60%였다. 그 시간이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비 올 확률이 있는 날은 무조건 우산을 챙겨야 하는데, 이상하게 우산을 챙겨서 나오는 날은 비가 오지 않아서 하루 종일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았다. 결국 필자는 일기예보를 믿어보기로 하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최근 들어 차를 두고 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특히 강남 쪽으로 일을 보러 갈 때는 집 앞에서 바로 연결되는 버스를 이용했다. 차를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크게는 환경에 이롭고, 작게는 주차를 고민하지 않아서 좋았다.

 

마침 버스가 오기에 얼른 올라 탄 후 중간쯤 창가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20분쯤 지났을까? 날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비는 저녁에 온다고 했는데……, 요즈음은 일기예보가 잘 맞던데……, 낭패였다.

 

아직 도착하려면 30분은 있어야 하니 그 사이에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머피의 법칙은 어쩌면 이리도 예외가 없는지……, 혀를 끌끌 찼다. 비가 많이 내리면 내리자마자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치기는커녕 점점 더 퍼붓기 시작했다. 시간이 11시쯤 지나서인지 차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섰지만 타는 사람은 있어도 아직까지 내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타는 사람은 대부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있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살 수 있는 어딘가를 향해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어떻게든 되겠지, 체념하고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버스는 이제 강남역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이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정류장에서는 필자 말고도 두 명이 더 일어서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운전기사가 서 있는 승객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혹시 우산 없으신 분, 앞쪽으로 오세요.” 내리려고 했던 세 사람은 모두 운전기사에게 다가갔다. 버스가 정류소에 정차하자 운전기사는 사이드 기어를 채우더니 운전석 왼쪽에서 우산 세 개를 꺼냈다.

 

“자, 이거 새 우산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쓰세요.” 고마운 마음으로 우산을 받으며 말했다. “기사님, 이 우산 어떻게 돌려드리면 될까요?”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손님들이 두고 내리신건데, 찾아가지 않는 우산이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기사님, 복 많이 받으세요.”

 

승객들은 한마디씩 하고 앞문으로 하차했다. 우산을 쓰고 약속장소로 향하는데, 정말 고마웠다. 만약 우산이 없었다면 이 비를 고스란히 맞고 뛰던가, 아니면 어찌할 바를 몰라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고 마냥 서 있었을 것이다. 차 번호라도 외워와서 친절한 기사님이라고 엽서라도 한 장 써넣을 걸, 하는 생각으로 아쉬워하며 약속장소로 행했다.

 

문득, 누군가에게 우산이 되어준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건네준 사람은 가벼운 친절이지만 우산을 건네받은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큰 친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버스는 물에 젖은 도로를 쌩쌩 달렸다. 한쪽 손에는 낮에 빌린 우산이 들려 있었다. 그 우산을 바라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살아오면서 우산이 되어주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무조건 필자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사람 때문에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렇다면 필자 역시 누군가에게 우산이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크고 작은 사건들이 오버랩되었고 몇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드러나도록 누군가의 우산이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다.

 

사람은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또 누군가에는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가 확실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배려지만 오늘 만난 버스 운전기사님 같은 분이 많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훈훈한 사회가 될 것이다. 필자도 힘이 닿는 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우산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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