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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훈의 詩談/3] 한용운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시 ‘님의 침묵’

 

독립운동가 겸 승려·시인으로 정평이 난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님의 침묵’이다. 필자는 이 시가 한용운 선생의 시세계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자신한다. ‘님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심정’을 잘 표현한 이 시는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아간 한 선생의 삶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 문학계에서는 이 시에 등장하는 ‘님’을 ‘우리나라 조국’으로 해석하는 게 중론이다. 

 

흔히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 이별이란 것은 찰나에 이뤄지는 게 다반사다. 그만큼 준비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렵다. 설령 다가올 이별을 감지하고 준비한다 해도, 이별에는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이런 가운데 슬픔을 새롭게 찾아올 인연·희망으로 반전시키는 생각전환을 틈틈이 해보는 것은 어떨까. ‘만남과 이별의 실상’을 깨닫는다면 향후 살아갈 시간을 더 보람되게 보내진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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