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포스트 메뉴

이낙연, 스트레스 해소법 뭘까.

[서평] 이제이 작가의 '어록으로 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이낙연, 진정 그는 어떤 사람일까. 총리시절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연설비서관이 쓴 책을 통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지난 8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전국정기대의원대회 당대표선거 3명의 후보 중 최고의 득표율 60.77%로 당 대표에 당선된 이낙연. 그는 지난 1월 14일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최장수(958일) 총리로 기록됐다. 그 뿐 아니다. 지난 2014년 지자체선거에서 전국 최고의 득표율(77.96%)로 전남도지사에 당선됐다. 특히 한국 역사상 최초의 정계 5선 대변인을 역임했고, 현재 5선 의원이다.

 

이낙연을 옆에서 보좌하고 관찰한 한 보좌관의 탐구기록서가 눈길을 끈다. 총리 시절 연설비서관으로 활동했던 이제이 작가가 펴낸 <어록으로 본 이낙연>(삼인출판)이다. 현재 4쇄에 들어갔다. 그 만큼 이낙연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작가는 20여년 시사 토론 프로그램 방송작가를 하다, 이낙연 총리가 임명되면서 연설비서관으로 발탁돼 3년간 인연을 맺었다. 21대 국회가 열린 뒤에는 국회로 자리를 옮겨 이낙연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낙연의 언어, 이낙연의 인생

 

책은 제목 그대로 ‘어록으로 본 이낙연’의 정치언어의 특징을 기술하고 있다고나 할까. 저자는 이낙연의 정치언어의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구어체’ 언어와 ‘품격’언어이다.

 

“거칠게 표현하는 게 꼭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방식은 제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정치언어’의 한부분입니다.”

 

지난 2018년 9월 13일,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이 대정부 질의를 하면서 ‘촛불혁명’이란 표현을 고리로 총리를 압박해 들어올 때 그의 답변이었다.

 

지난 8월 17일 CBS ‘김현정 뉴스쇼’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대표 후보는 진행자 김현정 씨가 밝힌 ‘통합당이 민주당을 여론조사에서 앞선 부분이 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선거에서 호남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질문에 이런 답변을 했다.

 

“참 다행이지요. 그 쪽 정당이 호남을 중요시한다든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던 선거에서 바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공약 1호로 세웠다. 나중에 무산이 됐지만요. 그런 식으로 이른바 좌 클릭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정책이나 태도에서 두 정당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백번 환영합니다. 지지율을 위해 멀리 떨어지게 하는 것은 옳은 정치가 아니다.”

 

야당 대표를 자극하지 않고 격조 높은 언어로 응수한 것이다.

 

이낙연은 우리말을 제대로 쓰기위해 오래전부터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코드, 로드맵, 워크숍 등 흔히 쓰이는 영어도 쓰지 않고, 우리 말 발음도 정확히 해 왔다. 전남 영광이 고향이고 부인도 전주 출신인데도 사투리 억양의 흔적이 없다. 연애하던 시절 부인 김숙희 여사가 그에게 물었다.

 

“제가 신기해서 어떻게 사투리를 전혀 안 쓰냐고 물었더니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다’고 해요.

자신이 쓰는 말은 서울말이 아니라 표준어라면서 책에서 본 대로 표준어를 쓰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책을 많이 읽고, 책에 쓰는 표준어로 말한다는 말이 정말이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지난 8월 22일 코로나19 자가 격리 닷새째 날에 이런 글을 남긴다.

 

“자가 격리 닷새째, 아침 체온 36.2도. 체온을 하루에 세 차례 보건소에 알립니다. 정상입니다. 까다롭지만 생활수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내가 고생합니다. 책 두 권을 꺼냈습니다. 세종연구소가 펴낸 ‘김정은 리더십 연구’, 김정은 위원장의 성장과정과 리더십 전반을 다루었습니다. 브래드 글로서먼이 지은 ‘피크 재팬’,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의 쇠퇴를 서술합니다. 한국에 대한 경고도 될 수 있습니다.”

 

부인 김숙희 여사의 말대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이낙연은 책벌레였다. 가능하면 단숨에 읽으려 노력하는 ‘폭독’ 스타일이다. 총리시절 주말이나, 명절연휴, 국가기념일 등 휴일에 밀린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총리 취임 초기부터 책을 읽은 뒤 짤막한 감상을 적어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국민과의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낙연 부부는 1980년 8월에 결혼을 해, 올해로 결혼 40주년을 맞았다.

 

“아내는 매사 긍정적입니다. 살다보면 걱정거리도 있고 견디기 힘든 시기도 있는데 그때마다 이 사람이 위로를 해 준답시고 옆에서 몇 마디를 하면 정말 신기하게도 버티게 돼요.” -이낙연

 

“남편은 걱정을 앞당겨서 하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세심하고 안정적이죠. 둘이 성격이 정말 달라요. 우리부부는 그렇게 달라서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부인 김숙희

 

이낙연 당대표는 서울대 법대, 김숙희 여사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했다. 법대와 미대의 차이였을까. 결혼 3년차까지 사소한 말다툼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후부터 부부싸움 한번 없이 지내왔다고.

 

2001년 11월 새천년민주당 첫 대변인을 시작했다. 당시 대변인을 ‘정치판의 꽃’으로 불렀다. 21년간 기자로 일하며 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글이 아닌 말을 다루는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이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등 무려 다섯 번의 대변인을 역임했다.

 

이낙연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 '직진'

 

특히 2002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맞붙었던 16대 대선에서 이낙연 대변인의 논평 중 국민들의 마음속에 가장 깊게 자리한 어록이 있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 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보라”

 

당시 지지율이 떨어진 노무현 대선 후보 교체를 요구하면서 잇따라 탈당하는 소속의원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이낙연은 당시 논평을 내게 된 상황과 심경을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라는 책을 통해 털어놨다.

 

“우리 민주당에서 탈당자가 연속해서 나오던 때였습니다. 당에서는, 특히 노무현 후보 진영에서는 탈당자들을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기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기도 지쳐있었고, 생각도 조금 달랐습니다. 게다가 대통령 후보가 단일화가 되면 다시 합쳐야 할 정치인들에게 심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본문 중에서

 

그는 대변인을 하면서 줄곧 ‘저급한 말, 저주의 말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라는 말을 자주했다. 말수를 줄이며, 절제와 품격을 잃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노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이 7명이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돌아가면서 취임사를 쓰게 했다. 하지만 다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마지막에 결국 이낙연 의원이 펜을 들었는데, 바로 한자도 안 고치고 오케이를 했다.”- 본문 중에서 ‘강원국 참여정부 연설비서관’의 발언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이낙연을 신뢰했다. 청와대로 들어가자고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이 때 신주류와 구주류의 갈등으로 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탈당파 등이 주축이 된 열린우리당으로 갈라졌다.

 

“노 대통령은 몇 차례 사람을 보내 열린우리당 합류를 권했다. 신당행을 만류하는 모친의 뜻과 소신에서 꼬마 민주당을 지켰다.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주도한 탄핵에 동조했다. 노 대통령이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라는 발언을 두고 공무원 중립 의무 위반이라며 탄핵 절차에 들어갔다. 재적의원 271명 중 195명의 의원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93명 반대 2명이 나왔다. 반대한 두 명의 의원은 자민련의 김종호 의원과 이낙연 의원이었다.”- 분문 중에서

 

그는 분당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분당 직후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다, 신당 가지마라 잉!”하고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를 뵙고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를 여쭈었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였다.

 

국민만 보고가는 현장형 정치인.

 

전남지사 시절 대표적인 복지정책 중 하나가 ‘100원 택시’이다. 100원 택시는 오지에 사는 주민들이 택시를 부르면 그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100원을 받고 택시를 운행한 뒤, 차액을 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교통사고, 산재사고, 자살 등 감소 추세가 이어졌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제도적 변화도 잇따랐다. 위험 외주화 방지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이 30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소방관들의 국가직 전환도 이뤄졌다. 총리시절 안전에 철두철미했다. 이임을 앞두고 향한 곳이 삼척, 고성, 포항 등 큰 재난이 닥쳤던 지역이었다. 그래서인지 ‘안전총리’라는 별칭도 얻었다.

 

문 대통령은 총리를 그만 둔 날, 재난 재해 대처 경험을 한권의 책으로 남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제가 1월 14일 총리를 그만 둔 날, 대통령 내외가 저와 정세균 총리를 청와대로 불러 막걸리를 주셨습니다. 그 때 대통령이 이 총리님은 글을 잘 쓰시니 책 한권 쓰시죠. 재난 재해 대처 경험을 써 주십시오, 그럼 훗날 정부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본문 중에서-

 

여기에서 현재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민들이 불안에 하고 있는 이때, 안전 총리라는 별칭대로 이제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전염병을 예방해 ‘안전 대표’라는 별칭이 붙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국무총리시절 공직자들에게 낮출 것과 높일 것, 각각 세 가지를 주문했다. 낮출 것은 규제, 장벽, 공무원의 자세였고, 높일 것은 역량, 책임감, 감수성이었다.

 

이낙연 당대표가 애창하는 시중 가장 좋아하는 시는 이해인 수녀의 ‘풀꽃의 노래’였다.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모든 사람 누구나 풀꽃처럼 의미 있는 존재로 인정받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내가 마신 건 사이다가 아닌 막걸리.’ 총리시절 공관 만찬 대부분이 노란양재기에 따른 막걸리였다. 막걸리가 좋은 이유를 그는 이렇게 답하고 있다.

 

“첫째, 막걸리는 배가 불러 안주를 많이 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건강에 좋다. 둘째, 어지간해서 막걸리로 원 샷을 외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천천히 나눠 마시며 마주 않은 사람과 도란도란 담소할 수 있어 정을 쌓기 좋다. 셋째, 주머니 사정이 좋다. 막걸리 값이 싼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배가 불러 웬만해서는 2차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2차를 안 가니 술 마시고도 집에 일찍 들어간다. 심야 귀가를 하지 않으니 가족 관계 등 삶에 문제가 없고 다음 날에도 지장이 없다.” -분문 중에서

 

이낙연에게 맞는 사자성어 뭘까. 둔필승총(鈍筆勝聰)이다. ‘무딘 붓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의미로 메모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명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지 뒤 호주머니에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메모를 한다. 메모는 현장을 반영하고 생각을 전진시키기 때문이다.

 

생애 대부분을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도왔던 오스트리아 출신 수녀 얘기를 담은 다큐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총리시절 공무원과 그 가족 600명이 함께 봤다.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수녀는 20대 중반인 6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당시 GNP가 전 세계 꼴찌였던 대한민국 소록도에 왔다. 하지만 70대 할머니가 돼 40년 만인 2005년에 홀연히 떠났다. 두 수녀는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의 환부를 맨손으로 피고름을 만지고 밥을 같이 먹기도 했다. 현재 오스트리아에 거주한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는 대장암에 투병중이고, 마가렛 피사텍 수녀는 치매로 양로원에 머물고 있다고 전해진다,

 

총리시절 소록도에 여는 ‘마리안느 마거렛 나눔 연수원’ 개관식에서 축사를 한다.

 

“두 분의 간호사님의 소록도 생활은 사랑의 기적, 그것이었습니다. 두 분은 한센인들의 상처 입은 맨몸에 맨손으로 약을 발라주셨습니다. 한센인들과 같은 밥상에 앉아 국물을 같이 떠서 드셨습니다. 두 분은 일제가 자행한 단종 조치와 강제노역으로 몸과 마음이 부서진 한센인들을 온 마음으로 위로하셨습니다. 가족에게 조차 버림받고 ‘차라리 죽여달라’며 울부짖은 한센인들을 밤새 안아주셨습니다. 의약품과 담요를 고국에서 해마다 얻어다 한센인들께 드리곤 하셨습니다. 그러기를 40년 안팎, 노년에 접어드신 두 분은 이제 소록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겠다고 생각해 2005년 홀연히 떠났습니다. 소록도에 들고 오셨던 해진 가방 하나씩 만을 다시 들고 두 분은 가셨습니다. 소록도에 보내는 편지 한 장을 김포공항에서 부치고 두 분은 고국으로 가셨습니다.” -본문 중에서

 

그럼 이낙연의 건강 비결과 스트레스 해소법은 뭘까. 바로 ‘마신다. 잔다. 읽는다’로 요약할 수 있다. 막걸리를 마시고, 잠을 푹 자고,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어록으로 본 이낙연>의 저자 이제이 작가가 덧붙인 말이 눈길을 끈다.

 

“3년 가까이 그의 연설을 써 오면서 내가 파악해 온 이낙연을 말과 글을 통해 재구성하는 일은 스스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이낙연은 성인이 된 이후 소위 백수로 지낸 시절이 단 한 번도 없다. 기자로 21년, 국회의원 다섯 번, 도지사와 총리로 일해 왔다. 그의 이러한 이력을 두고 한 언론에서 ‘신공’이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다.”

 

책을 쓴 이제이 작가는 20여년 간 방송작가로 시사·토론 프그로램을 만들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서울시 브랜드위원회와 자유시민대학에서 기획과 자문을 맡기도 했다. 이낙연 총리의 연설비서관으로 발탁돼 3년간의 호흡을 맞췄다. 그는 <역사 in 시사>, <잠깐만>, <아이는 도서관에서 자란다> 등을 집필했고, 엮은 책으로 <농부로부터>가 있고, <역사e 1,2,3>의 해설을 썼다.

배너

포토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