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 전문이다. 짧지만 매우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이 시를 처음 읽고 나서 사람의 관계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이 시를 교과서적으로 풀이하면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간의 단절을 뜻한다.
즉 ‘섬’이란 바다 한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소외된 고독한 존재성을 뜻하는데 현대인들은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것은 그 속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 즉 사회 구성원들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풀이는 어디까지나 교과서적이고 감성으로 풀이하자면 이 시는 그렇게 간단하게 풀이되지 않는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난다. 때로는 일로, 때로는 언제 만나도 좋은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에도 시간을 쪼개어 이 섬 저 섬을 방문하고 있다. 필자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친해지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매일 만나도 뭔가 긴장되고 불편한 반면 어떤 사람은 1년에 한 번을 만나도 편안하고 부담이 없는 사람이 있다. 내숭을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가 과연 인간 존재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하고 있어서인지 나 자신도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마음의 움직임을 일일이 좇을 필요도 없거니와 그 진의 역시 명확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이 가는 곳으로 따르고 있다.
‘섬’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는데 그 섬은 보길도다. 대학시절 절친과 보길도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배가 그리 크지 않았고 완도에서 7시간이나 걸려서 들어가야 했다. 윤선도 유적지로 유명한 보길도는 검은색 몽돌이 끝없이 펼쳐진 몽돌해변이 있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긴장이 풀려서인지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렸는데 그 지갑에는 공교롭게도 돌아가는 배표가 들어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두 사람이 돈을 합쳐 한 사람이 가지고 있었으므로 돈 한 푼 없이 꼼짝없이 섬에 갇히게 된 신세가 된 것이다.
지금이야 지갑을 잃어버렸다 해도 휴대폰이 있으니 휴대폰으로 결제를 해도 되고 또 SOS를 치면 배삯 정도는 송금을 받을 수도 있을 테지만 아무튼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눈앞에 있는 배를 타지 못하면 없는 돈에 다시 민박을 구해야 하는 아찔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당시 완도로 왕복하는 배는 하루에 두 번 있었는데 그 배가 그 날의 마지막 배였다. 우리가 방법을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데 커다란 카메라를 든 한 남자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마 너무 허둥대고 있어서 누가 봐도 배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나보다. 우리는 두서없이 저 배를 꼭 타야 하는데 지갑을 잃어버렸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그 사람은 우리 두 사람의 배삯은 물론 서울로 돌아갈 여비까지 넉넉하게 빌려주었다.
자신은 사진작가인데 며칠 더 보길도에서 머물다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다. 필자는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서울에 오시면 맛있는 저녁식사와 함께 빌려준 돈을 꼭 갚겠으니 전화를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명함이라도 한 장 받아두었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던 우리는 막 떠나려고 하는 배에 허둥지둥 올라탔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전화를 기다렸지만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 명함 한 장 받아두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그 일은 잊혀져갔다. 그리고 그 빚은 아직까지 갚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도 필자는 바다 한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섬 같은 존재를 만나러 집을 나선다. 외따로 떨어져 있으나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혹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로도 위안을 받을 섬과 섬을 연결해본다. 그리고 살면서 필자도 궁지에 몰린 섬 하나쯤은 구제해야지 하는 각오도 새기면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곳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