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통한 깨달음, 시로 표현했다"

2023.08.28 14:32:49

[서평] 박은영 시인의 첫 시집 '마음의 배'

인간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괴로움과 외로움 그리고 힘든 고통이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잘 극복해 가는 것이 또한 인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어려움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킨 시그림집이 눈길을 끈다.

 

박은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마음의 배>(2023년 8월, 퍼플)는 지난 코로나19가 한창인 시기, 1년 여간의 단절된 시간 속에서 깊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극복하고, 깨달음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한 시그림집이다. 저자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1년 3개월에 거쳐 지속적으로 퇴고를 해 100편의 시와 함께 45점의 삽화를 적절히 배치했다.

  

시집은 3부(외로운, 미소 짓는, 안타까운)로 구성했다. 첫 파트 ‘외로운’은 지난 2~30대 찌든 외로움과 40대 승화된 외로움을 맞이하며, 극복하는 과정의 흐름을 시에 담았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대표적인 시가 ‘마음에 창문을 달아 놓았다’이다. 정호승 시인의 책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드립니다>의 제목을 변용해 저자의 문장으로 바꾼 시이다.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는 창문을

마음에 달아 놓았다

 

무엇이 힘든지 왜 기분이 나쁜지

창문을 열어 본다

 

창문을 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그래서 그랬구나

마음은 풀어진다

 

다시 포근히

창문을 닫아 놓는다

 

힘들고 외롭고 괴로울 때일수록 마음을 스스로 토닥토닥, 쓰담쓰담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것. 뭐가 문제인지, 마음에 문을 열고 그것을 달래주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시인은 지적하고 있다. 내적인 성장 즉, 내면의 마음의 진화를 시속에 담았다고나할까.

 

다음 파트 ‘미소 짓는’은 외롭고 괴로운 순간에도 즐거움의 의미를 부여했다. 바로 ‘초록 효과’는 자연을 연결시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대표적인 시이다.

 

산에 가면

자연을 흡수하고 온다

온갖 스트레스가 저절로

사그라든다

 

자연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세상에 지쳤을 때

심신을 위로해 준다

 

나를 맑게 해주는

자연이 있어서 고맙다

 

이 파트에서는 등산, 여행, 가족 등 여러 행복한 경험과 순간들을 담았다.

 

마지막 파트 ‘안타까운’에서는 시를 쓸 당시 시인의 거주지는 1인 가구, 회사 사무실은 1인 근무, 주말에는 코로나19가 심각해 외부활동이 단절된 시기였다. 모든 것이 단절됐던 시기를 보내면서 대화할 사람도 없었다. 말문이 막힌 시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머릿 속에서 글이 쏟아졌다. 이를 시로 표현했다. 이 파트에서는 코로나19, 환경위기, 갑질, 몸의 아픔 등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접근했다. 대표적인 시가 ‘에티켓’이다. 화장실 안내문을 보고 문뜩 생각나 쓴 시이기도 하다.

 

사용하신 휴지는 변기에 넣어

물과 함께 내려주세요

휴지통 없는 청결 화장실

 

사용하신 옷은 수거함에 넣어

유행과 함께 버려주세요

폐기 없는 의류 재활용

 

사용하신 만남은 추억에 넣어

이별과 함께 잊어주세요

보복 없는 근절 스토킹

 

사용하신 막말은 사표에 넣어

자리와 함께 물러나주세요

갑질 없는 존중 사무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화장실 안내문 ‘휴지통 없는 청결 화장실'을 ‘갑질 없는 존중 사무실’로 연결시킨 저자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누군가(저자 일 수도 있고)가 회사 내 갑질과 괴롭힘을 당함에 대한 경종으로 보여 통쾌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제목 <마음의 배>는 저자가 내면적으로 많은 변화를 하고 싶었던 시기인 지난 2015년에 그린 그림 제목에서 따왔다. 이태리에서 미술을 전공한 삼촌에게 그림을 배우러 갔는데, 항해하는 배를 그리라고 했다. 배를 그린 후 자유롭게 그리라고 해 그렸는데 해골을 그리게 됐다고. 변화를 하고 싶은데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책에는 불어로 표현. Il faut changer C'est dur, 변화해야 한다, 그것은 힘들다). 하지만 진정 ‘마음의 배’를 항해시키려면 뼈를 깎아 해골처럼 되는 내공이 있어야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시집은 이 외에도 저자가 일본의 시조 하이쿠를 읽고 영감을 받아 쓴 '삼행시'와 대학시절 컴퓨터 그림판에 남긴 '마우스로 그린 짧은 단상'도 부록에 수록했다.

 

특히 이 시집은 시인이 20대 젊은 시절 자신에게 약속한 '마흔이 되면 책 한권을 내야지'하고 생각한 것이, 필연 아닌 우연히도 마흔에 책을 내게 됐다고. 저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제가 마흔이었는데, 올해 정부가 만 나이로 개정을 해, 올해도 똑같은 마흔의 나이이다. 책(시그림집)을 작년 첫 번째 마흔에서 시작해 올해 두 번째 마흔에서 책을 현실화해 신기하다.”

 

저자는 글을 쓰는 저명인사도 아니고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 출신도 아니다. 고작 대학에서 불문학과와 대학원에서 프랑스문화 매니지먼트를 공부했을 뿐이다.

 

다만 저자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이고 시집, 불교서적 등 26권의 저서를 남긴 고 박희선 시인이다. 계룡산국립공원에 그의 시비있고 충남 논산 양촌에 사리탑도 있다. 특히 청록파 고 박목월 시인이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또한 고인이 된 부친은 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글을 썼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고등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저자는 산문 부문 3등을 했단다. 태생적으로 글에 대한 재주가 있는 집안으로 보인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동생이 시집을 읽고 남긴 글도 눈길을 끈다.

 

"일상의 순간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저자의 경험과 통찰을 담아낸 시를 읽으며 함께 울고 웃었다. 내 마음의 배는 어디를 향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볼 수 없다. 온라인 주문형 도서이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도서 출판은 비용이 많이 들어 저자가 주문형 도서(POD, Print on Demand)로 제작했다.

 

한마디로 POD는 디지털화한 콘텐츠를 독자의 요구에 따라 책으로 제작해주는 즉석 출판 시스템이다. 서점에 설치된 단말기와 방대한 양의 콘텐츠를 저장한 데이터베이스에 인쇄 시스템이 연결되어 주문 즉시 책을 만들어내는 형태이다. 독자들에게 주문이 들어오면 파일 형태에서 종이책으로 제작해 배송된다. 교보문고에서 운영하는 주문형 출판사인 퍼플(PUBPLE)에서 펴냈다. 출판사에서는 시집의 광고 홍보만을 맡는다.

김철관 33566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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