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일제 무단통치의 원흉‘아카시 헌병사령관 친필서한’최초 공개

  • 등록 2016.08.12 14: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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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무단통치의 최선봉장!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

. 의병탄압과 무단통치의 주범인 아카시 헌병사령관 친필
. 헌병경찰을 기반으로 무단통치의 구상을 밝힌 실증자료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광복71주년을 맞아 의병탄압과 무단통치의 주범인 일제의 이른바 한국주차헌병대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의 친필서한을 일본 교토(京都)의 개인 연구자로부터 입수하여 8월 12일 오전 10시 독립기념관 자료실에서 최초로 공개한다.

 

이 서한은 1910년 경술국치 전후 한국민 강권탄압을 주도한 아카시의 무단통치 정책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본질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자료이다.
 
이 자료는 1910년 경술국치 전후, 곧 1907년부터 1914년에 이르기까지 8년간 최선봉에 서서 한국민을 철저하게 탄압한 헌병대사령관 아카시의 무단통치, 헌병경찰제 주장 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서한에서 아카시가 역설한 헌병의 한국 경찰권 장악(헌병경찰제), 헌병대사령관 직위 확보 등의 주장은 1910년 6월 데라우치 통감(국치 후 총독) 부임 이후 그대로 실현되어 경술국치 이후 일제 무단통치의 근간이 되었다. 이 자료를 통해 아카시는 한국민 무단 탄압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제로 집행한 원흉임이 확인된다.

 

▲ 아카시 모토지로, 의병탄압․무단통치의 최선봉
1864년 후쿠오카시(福岡市)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10월 9일 한국주차헌병대장으로 부임하여 왕산(旺山) 허위(許蔿) 의병장을 직접 신문하는 등 의병 탄압의 주역으로 악명을 떨쳤다. 1908년 12월에는 일제 침략군인 이른바 한국주차군의 참모장을 겸직하였고, 오늘 공개하는 서한의 수신자인 사가키하라 쇼조(榊原昇造)에게 1909년 8월 1일 헌병대장직을 넘겼다. 국치 직전인 1910년 6월 절대적 후원자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한국 통감으로 부임하여 한국주차헌병대를 한국주차헌병대사령부로 확대 개편할 때 초대 헌병대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무단통치의 기틀을 다졌고 1914년 4월까지 재임하며 한민족의 암흑기를 철저하게 강요한 원흉이다. 한국 재임 시 특히 ‘기포성산(碁布星散, 바둑판 포석과 하늘의 별처럼 헌병을 총총히 배치함)’ 탄압방식으로 악명을 떨쳤다. 1918년 대만총독으로 부임한 뒤 이듬해 죽었다.

 

김원국 기자 kwk0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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